지난주 초 불법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특검을 제안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공식 기자회견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 인터넷이 떠들썩했던 이유는 최근의 안철수 신당설에 관한 공식입장이 천명되는 것 아니냐는 관심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을 선언할 것이란 긴장감까지 있었다.
그런데 나타난 그림이 느닷없는 특검 제안이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왜 이제 와서야 그런 제안을 하는지, 이미 민주당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제안해 놓은 특검카드를 새삼 꺼내드는지를 도통 몰라 했다. 이 시점에서 지난 대선에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상당수의 국민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 후보 한사람이 특검 제안에 가세한 의도가 뭐냐는 것이다.
안 의원의 기자회견 후 새누리당은 즉각 특검 제안을 거부하고 “검찰수사와 사법부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한 3권분립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철저히 조사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마당에 안 의원의 특검 주장이 불쾌하다는 표정이 여실했다. 안 의원이 새로 터져 나온 민주당 홍영표 의원 비망록의 ‘미래대통령’ 운운하는 논란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안철수 의원이 기회주의적인 발상으로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난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일부 보수층에서도 일어났다. 뒷북 따라 하기 정치로는 그가 말하는 새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열되고 있는 비망록 진실게임에서 한발 비켜나려는 ‘안철수식’의 물타기 정치라는 견해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이 개입했네, 안 했네 하는 정치권 시비가 이제 국민관심사의 큰 비중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정치 역량 부족을 꼬집었다.
새로울 게 하나 없는 내용을 무슨 중차대한 발표라도 하는 양 긴장감을 준데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고 보면, 정치역량에 관한 얘기가 단순히 안 의원을 폄하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비망록’ 진실공방의 물타기 보다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오히려 손해 본 계산서가 분명하다.
민주당이 안 의원의 특검 제안에 시큰둥해한 데서도 그 상처가 가볍지 않다. 사실상 당론으로 특검을 추진해 온 민주당이 안 의원 제의에 차갑게 반응한 것은 호남지역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을 의식한 것일 게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독자 세력화를 위한 신당 창당 준비에 한창인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계산조차 못했다면 안철수 의원의 리더십 부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당 지지율에서 안철수 신당에 밀리는 것으로 조사된 민주당이 밥그릇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험을 안 가질 수 없다. 그런 껄끄러운 상대가 특검 이슈를 주도해 나가면서 신당 창당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술에 뜻이 같다고 멍석 깔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뒷북치는 특검 주장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시끄러워진 비망록 물타기도, 존재감 부각에도 다 실패하고 ‘새 정치’의 대척점에 서있는 안철수 의원 모습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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