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거물급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원로 인사들의 ‘정치단체’가 결성됐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맹신해서 따른 동교동계 일부 원로 인사들과 김영삼 전 대통령 쪽 일부 인사들이 주축이 돼서 몇몇 재야인사들과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내세운 간판은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이라고 했다.

이들이 나선 명분은 향후 개헌과 정치 혁신, 정치 주체 간 연대 활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옛 거물 정치인으로는 동교동계 좌장으로 불린 권노갑 전 의원과 상도동계 대표격인 김덕룡 전 의원이 있고 역시 동교동계 중진이었던 현 민주당 상임고문인 정대철, 이부영 전 의원 등이 포진돼 있다. 네 사람 모두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단체 성격은 물으나마나 분명한 야권 쪽이다.

다만 상황 봐가며 앞으로 안철수 신당에 줄을 서거나, 민주당 쪽에 가세하겠다는 속내로 보인다. 우선은 “안철수 의원이 당을 만들면 안 된다, 야권 분열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 들어왔으면 한다”는 입장이지만 크게 진정성 있어 보이지가 않는다. 민주당이 천막당사를 만들고 강경 장외투장을 벌여도, 또 여권과의 대화에 나서 봐도, 좀체로 지지율이 오르지를 않으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번 세를 규합해보겠다는 저의다.

박근혜 정부 출범하고 나이 80대를 바라보는 1960-70년대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고 있는 데서 용기백배한 모양새가 나타난다. 17일 일요일 창립대회를 열고 향후 장년층 활동가를 중심으로 1000여 명의 발기인단을 발족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정당이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부터의 야권 선거 연대를 추진해서 존재감을 높이고 지분 보장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야권 ‘올드보이’들이 속속 정치판 귀환을 노리게 된 데는 물론 현 정권의 ‘노병’ 등용이 용기를 줬겠지만, 더 큰 이유는 작금의 ‘정치실종’ 현상이 이들이 비집고 들 ‘틈새’를 넓혀왔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 이 노병 군단에 ‘정치 복원’에 나설 명분을 줬다는 얘기다. 며느리 살림살이 무능하다고 소문나면 시어머니가 다시 바빠지는 이치라고나 할까.

과거 군사독재기에 우리정치는 무능하고 암울했다. 모든 정치 화두가 ‘민주화’였던 시절에 야당은 무능하고 비겁했던 것이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민중의 염원을 동력으로 한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이 태동했을 때의 감격을 역사가 다 적어놓지를 못했을 것 같다. 상도동계,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재야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시대적 희망처가 됐다.

그때 권노갑 전 의원과 김덕룡 전 의원이 양 계보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의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이 당시의 국민 지지를 향수한 것은 설마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무리 정치가 마약 같다지만 상황 판단이 그렇게까지 흐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말대로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국민 말고 딴 곳을 볼 수 없을 터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 주기를 바랄 때 일어설 줄 아는 정치,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기를 바랄 때 앉아서 기다릴 줄 아는 정치가 많이도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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