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9일 영국 BBC 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날짜 까지 받아놓고 취소한 사태를 언급하면서 “이런 기본적 약속까지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신뢰가 쌓일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은 그밖에도 김정은과 만날 수 있지만 “일시적인 이벤트성 회담을 지양하고자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眞正性)”이라고 11월 3일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북한 지도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깊은 불신이 깔려있음 반영한다.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 북한 지도자를 신뢰한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주장대로 북이 “1994년에 핵을 포기했다.”고 공언하면서 북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을 믿으라는 말이었다. 그는 또 김정일이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며 “남북한 문제를 풀려면 김정일과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일을 신뢰해도 되는 사람이므로 ‘진정성’이야 있건 없건 대화만하면 모든 게 풀린다는 말이었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 “오랜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확언했다. 그는 또 “북한은 공격받지 않으면 전쟁 안 일으킨다”며 북핵 위협을 쓸데없이 “과장하지 말라”고 도리어 우리 국민들을 나무랐다. 노 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신뢰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했던 것 처럼 김정일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세 번이나 실험까지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김정일은 북 함정이 남한에 의해 “공격받지” 않았는데도 천안함을 공격했고 북한 영토가 “공격받지” 않았는데도 연평도를 포격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북한의 일방적 중단으로 큰 손해를 봐야 했던 개성공단의 한 기업은 입주를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러면서 그 기업관계자는 철수 이유로 북한을 “못 믿겠다”는 대목을 들었다. 그는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북한을 한 번 더 믿어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못 믿겠더군요”고 말했다.

북한은 6·25 기습남친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남한을 철저히 속여 왔다. 북한은 6·25남침 18일 전인 1950년 6월 7일 남북한간에 통일 최고입법기관 설립을 위해 8월 5~8일 남북 총선을 실시하고, 8월 15일 서울에서 최고 입법기관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또 남침 7일 전엔 북한 최고인민회의와 남한 국회를 통합하여 하나로 묵자는 호소문도 보냈다. 6·25 기습남침을 앞두고 남한의 대북 경계심을 해제키 위한 평화공세였으며 속임수였다.

박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신뢰할 수 없다”며 ‘진정성’을 요구한 것은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결의 표명이었다. 그에 반해 김·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믿는다고 공언하며 퍼주고 비위맞춰 줬다. 그들은 북에 속는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념적 좌편향과 정치적 야욕을 충족키 위해 우리 국민들을 속였다. 정상회담을 위해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몰래 김정일에게 찔러줬는가 하면, 십수조원의 경제지원을 약속했고 북방한계선(NLL)을 헌납하려 했다. 나라야 망가지건 말건 종북편향 정치 이데올로기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의 ‘진정성’이 확인될 때까지 정상회담에 나서서는 안 된다. ‘진정성’이 확인되기 전 김정은과 정상회담에 임한다면, 박 대통령도 김·노 대통령들 처럼 자신의 정치적 야욕 충족을 위해 국민을 속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다”며 김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며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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