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전고문이 ‘폭탄선언’가능성을 다시 언급해 여권을 긴장케 하고 있다.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서울 시내 모 병원에 입원치료중이다. 당뇨 후유증과 백내장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주변 측근들의 전언이다. 권노갑 전고문은 지난해 12월 양쪽 발 발톱 제거수술을 받은 데 이어 지난 6일엔 한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실명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그런 그가 최근 자신을 찾아온 정치권 한 인사에게 현재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며 여권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 관심을 끌고 있다.

“의원 비리 까발린다”

권 전고문을 위로차 최근 면회하고 온 정치권 인사 A씨는 “권 전고문이 대법원 판결과 관련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며 “특히 여권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 박지원 전실장은 대법원이 서울고법으로 무죄취지 파기환송을 선고해 사실상 석방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권 전고문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익치씨로부터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박 전실장의 주장만 법원이 받아들였다. 이 때문인지 권 전고문은 A씨에게 “박지원은 내보내고 나는 잡아놨다”고 여권을 향해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실제 권 전고문은 그 동안 현대 비자금과 관련, 무죄를 주장해왔다.

여권의 핵심인사들이 방문했을 때도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로차 방문했을 때 역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을 만큼 억울함을 호소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권 전고문은 최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불고 있는 합당논의에 대해서도 ‘합당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점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몇몇 인사들에 대해선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민주당으로 가지 않을 경우 모종의 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말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상 권 전고문이 갖고 있는 X-파일을 공개할 수 도 있다는 폭탄선언인 셈이다. 권 전고문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일부 의원들의 정치자금에 대한 부분으로 풀이된다. ‘권 전고문의 돈을 받지 않은 민주당 의원은 거의 없다’는 말이 나돌 만큼 권 전고문은 당 운영자금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권에선 ‘권노갑 리스트’가 떠돌았고, 권 전고문의 ‘폭탄선언’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실제 2003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준 후배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있다”고 말해 민주당과 통합신당 의원들을 긴장케 했다. 그러나 내심 폭탄선언이 나오길 기대하며 던진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문에 “말하기 어렵다” “모르겠다”고 비켜갔다. 당시 통합신당 의원들은 화장실까지 따라나와 악수를 청하는 등 권 전고문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갖춰 주변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면위한 대여 압박카드?

권 전고문의 폭탄선언이 있을 경우 해당 의원으로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 전고문이 여전히 일부 의원들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셈이다. 권 전고문의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여권은 다시 긴장하며 그 배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권 전고문의 초강경수에 대해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중인 정치인 사면논의에 포함되길 촉구하는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여권의 한 당직자는 “사면의 폭이 좁아질 경우 권 전고문이 포함돼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여권내에선 대북송금, 불법대선자금 관련 정치인의 사면논의가 한창이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여권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을 설득해 과거의 구태를 털고 간다는 명분아래 불법자금 정치인과 대북송금특검과 관련 처벌받은 인사들에 대해 대사면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도 “민주당과의 합당을 위해선 권 전고문과 박지원 전실장에 대한 사면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며 “고령과 병환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해 청와대가 사면을 단행해야만 민주당 관계의 합당논의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사면논의는 사실상 권 전고문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다. 권 전고문과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있는 동교동계 출신의 여권 관계자는 “권 고문의 경우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재심청구가 남아있지만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3월 대사면에 포함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권 고문을 위한 길”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여권 의원들의 위로 방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권 전고문의 발언은 여권을 향한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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