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지검 건물 전경
정치부 기자생활을 하면서 곤혹스런 경우가 한 두 번일까마는 제일 곤혹스러운 게 출입처와 취재원과의 관계다. 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 기자들은 한결같이 불가근불가원을 강조하며 취재원과 출입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해줬지만 막상 기자생활을 해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사회가 삼연(三緣, 학연지연혈연)을 중요시하다보니 취재원이나 출입처 관계자가 셋 중에 하나만 걸려도 인정에 이끌려 기사가 산으로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고위직 공무원을 옷 벗게 만드는 기사를 냈다가 학교 선배로 알려져 동문회에서 한강에서 고래잡을 X”이라며 쫓겨날 뻔한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최근 이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해 기자사회에 출입처와 출입기자의 관계가 도마위에 올랐다. 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 검사가 주인공인데 연말을 맞이해 출입 기자들과 가진 술좌석에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야당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술 좌석에 참여한 여기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을 한 게 문제가 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법조 출입 기자들은 보도를 유예했다는 점이다.

검찰총장이 나서서 진상조사를 한 이후 보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출입처 기자단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성추문 자체가 친고죄라는 점에서 해당 여기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후문이지만 해당 여기자중 진보매체에 몸담고 있는 기자는 발제’(기사쓰기전 편집국장에게 제출하는 취재보고)까지 했지만 보도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이 20여명에 육박하다보니 이 차장 검사의 성추문은 외부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검찰은 자체 감사에 착수해 징계수준이 어느 정도일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기자는 징계수준보다 이후 검찰 출입기자들이 과연 징계에 따른 기사를 낼 지가 더 관심사로 다가왔다. 징계수준이야 주의나 경고수준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법조 출입기자들이  검사라는 특수한 취재원과의 관계를 볼 때 후속 보도가 쉽지 않을 공산이 높다.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 출입을 10년 넘게 한 기자 역시 국회의원, 보좌관 그리고 국회 사무처 직원과 친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개인사도 털어놓고 하다보면 학연, 혈연, 지연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무엇보다 취재원과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비보도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국회나 여타 정부부처와는 달리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라는 점에서 법조 출입기자들이 보도를 안한 것은 문제가 있다. 정치 권력은 유한한데 반해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은 무한하다. 사실상 밤의 대통령은 검찰이고 언론사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막강한 수퍼 갑인 두 권력이 결탁할 경우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국민의 알 권리와 판단할 권리를 사전에 막고 보도를 유예한 것은 검찰과 법조 출입기자들의 보이지 않는 우월의식과 선민의식마저 엿보인다.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는 것은 비단 정치 권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검찰과 언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민이 무겁고 엄중한 권한을 잠시 법복과 펜에 빌려준 것이라는 점을 이번 성추문 사태를 계기로 되새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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