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웠고 대북정책으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Process: 공정:工程)’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은 아직도 창조경제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헷갈린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우리 국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라면 외국인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창조경제를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창조적 산업화’라고 엉뚱하게 해석하였다. 지난 11월초 박 대통령은 영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캐머런 총리는 박 대통령의 ‘창조적 산업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가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듣고 ‘창조적 산업화’로 받아들였음을 반영한다. 캐머런의 ‘창조적 산업화’ 발언은 당시 영국의 BBC방송을 통해 직접 청취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조경제 단어와 관련해 국회에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관련 장관에게 따져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창조경제 관련 장관은 그 뜻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 의미가 모호하다는 여론이 확산돼 가자 지난 4월3일 직접 설명에 나섰다.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우리 경제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꿈 보다 해몽이 더 좋은 설명 같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설명을 서너번이나 반복해 읽었지만, 지식이 짧아서였는지 창조경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료하게 머리에 잡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설명하면서 ‘과학기술’, ‘ICT’, ‘융합’, ‘산업과 산업 융합’, ‘산업과 문화 융합’ 등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열거했다. 그러다 보니 캐머런 총리도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접하고서는 ‘창조적 산업화’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창조경제의 표어가 모호해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엉뚱한 뜻으로 해석된다면, 이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창조경제를 고집한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적응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맞춰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사전달의 불통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조어(造語)도 뜻이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남북한간의 합의사항 준수와 북한의 국제사회 합의 존중, 정치적 상황에 구해 받지 않는 지속적이며 호혜적인 교류협력, 남북간 경제협력 다양화와 북한의 인프라 구축지원 등을 담고 있다. 남북이 국제적 규범에 따라 서로 신뢰를 쌓아간다면 북한에 경제지원은 물론 산업 인프라까지 구축해 준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선 신뢰구축 후 대북지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선 신뢰구축 후 대북지원’이란 쉬운 말을 두고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어렵고도 추상적인 단어를 대신 사용함으로써 뜻을 흐려놓았다. ‘대북지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경우 ‘대북 퍼주기’란 반발을 살 수 있다는 데서 ‘신뢰 구축’이라는 애매한 수사를 끼워 넣은 게 아닌가 싶다. 명료하게 ‘선 신뢰구축 후 대북지원’으로 표기했어야 옳다.
정부는 국민들이 1년이 다 되도록 이해못하는 ‘창조경제’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문구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의 성패 여부는 국민들이 그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 지지하고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책의 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정책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런 정책은 실효를 거둘 수 없고 실패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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