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조직폭력배(이하 조폭)와 연계된 일본 야쿠자 자금이 한국내로 유입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최근 경기악화로 자금사정이 열악해진 한국내 다단계 회사에 거액의 아쿠자 자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조폭과 일본의 아쿠자들이 신분을 위장, 합법적인 다단계 회사로의 진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에도 일본 야쿠자와 한국 조폭들간 합작을 통해 ‘다단계 회사’를 설립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내 조폭과 연계 자금난 겪는 회사 인수 나서고 있다”
신분 위장·사업망 구축에 유리한 사업판단 때문인 듯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다단계 업체만 500여 업체가 있다. 이중에는 음성적으로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업체도 100여곳으로 추정되고 있다.수많은 다단계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 등 각종 폐해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인해 다단계 회사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한 다단계 회사 간부 지모씨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암웨이 등 규모가 큰 외국계 회사를 제외하고 한국내 다단계 회사들 대부분은 자금 사정이 어렵다”며 “이로 인해 한국내 다단계 회사들이 대부분 파산 직전”이라고 밝혔다.이처럼 유동 자금이 열악해지자 다단계 회사들이 구조조정 등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가고 있다. 그중 일부 업체가 “일본 야쿠자 자금을 유치하려 한다”는 소문이 업계에서 돌고 있다.

서울 강남의 K업체는 불과 1년 전만해도 다단계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최근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자 일본계 금융회사인 P사에 긴급 자금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K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자금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일본 P사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며 “유치 자금은 12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문제는 P사가 일본 야쿠자에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점이다. 일본 야쿠자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등의 자금이 P사에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야쿠자가 P사를 통해 한국 다단계 판매회사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K사는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K사측은 “회사가 어렵다 보니 각종 악성루머가 번지고 있다”며 “다른 경쟁사에서도 K사의 조직력을 흡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문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K사의 경우 간부급들이 부산 칠성파 조직원 등 폭력조직 출신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어, 이런 소문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그간 부산 칠성파의 과거 조직원들의 다단계 회사로의 진출이 두드러졌던 것이 사실. 실제로 지난 2000년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S 벤처엔젤’이라는 다단계 금융회사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혐의로 칠성파 조직원 J씨가 수사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특히 부산 칠성파의 경우 다단계 회사 등 사업체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 등 일본 야쿠자와 잦은 접촉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 지난 88년 칠성파 두목 이모씨가 오사카 야쿠자 조직 ‘가네 야마구미’ 두목과 의형제를 맺는 등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부산 칠성파 두목 이씨는 91년 법정에서 “88년 11월 일본 오사카를 방문해 야쿠자 가네야마파 우두머리인 G씨와 의형제 결의를 한 바 있다”고 증언한 바 있어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또 다른 다단계 회사인 J사도 일본 야쿠자와 연계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J사는 그동안 OB파 등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폭력조직원들이 모여 회사를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다.이들 조직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유흥업소 등을 처분한 뒤 합법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든 회사라는 것이다. J사가 최근 자금난에 허덕이자, 평소 안면이 있던 야쿠자 조직에 도움을 청했다는 얘기다.이처럼 일본 야쿠자 조직과 연계된 한국 조폭들의 다단계 진출은 과거부터 계속 제기됐던 문제다. 업계에서는 “한국내 다단계 회사의 원조는 조폭들”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S사의 경우 과거 ‘한국 조폭과 일본 야쿠자 연계설’이 제기됐던 회사. 10여년전 당시 S사는 일본의 헬스용품 판매회사인 J사와 한국인 투자자인 K씨가 합작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이 회사는 일본 야쿠자와 국내 조직폭력세력인 S파가 연계해 세운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S사의 한 간부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일본 야쿠자가 자기 나라 안에서 피라미드 판매가 한계에 이르자 S파 등 한국조폭들과 손을 잡고 한국에 진출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며 “실제로 이 소문은 당시 업계의 정설로 나돌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S파의 두목 C씨는 S사의 자문회사의 대표로 재직하며 시장조사 등의 명목으로 다달이 판매액의 일정부분을 공제하는 등 경영에 깊숙이 개입한 흔적이 수사당국에 의해 적발돼, 이런 사실을 뒤받침했다. C씨는 일본 야쿠자 조직의 한 계파인 나가사키파 등과 연계해 S사를 설립했다는 것이다.당시 S사는 일본 야쿠자와 연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지목됐던 정부기관 인사는 L씨와 경제계의 J씨 등이었다.이후 S사는 검·경의 집중 단속과 수사로 인해 야쿠자와의 연계가 거의 없어진 상태. 그러나 다른 다단계회사의 경우 아직도 일본 아쿠자가 회사의 경영에 개입하는 등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조폭과 일본 야쿠자 등이 다단계 회사에 진출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신분위장이 쉽다는 것이다. 최근 조폭들은 과거의 신분을 위장한 뒤 정·관계 인맥을 앞세워 다단계 판매회사 등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이와 함께 조폭들이 사업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다단계 회사라는 점이다. 끈끈한 조직원들간의 인맥을 통해 다단계 사업망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 업계의 한 종사자는 “조폭출신들의 경우 자신의 부하들을 대거 동원, 하루에 몇단계씩 사업망을 구축하는 등 그 사업수단이 뛰어나다”고 전했다.경찰의 한 관계자는 “최근 조폭들은 유흥 업소 운영 등의 사업에서 벗어나 벤처나 다단계 회사로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그러나 조직원들이 소단위로 움직이고 있어, 이를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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