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빼내기 위해 암약 … 한국·일본 등 주 타깃중국기업, 스파이 대거 양산 … 홍콩·대만 등도 가세“산업스파이를 조심하라”.최첨단기술이나 기업 정보의 해외유출 사건이 잇따르면서 산업스파이들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한국 기업의 정보가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등으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은 회사기밀을 지키기 위한 보안유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전·현직 직원이나 스카웃을 통한 기밀 유출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한·중·일 등 ‘국가간 스파이전쟁’을 들여다봤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군사·정치 부문에서 스파이들의 활동이 극성이었으나 소련 붕괴이후에는 경제·기술 부문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컴퓨터, 반도체, 엔지니어링 등 최첨단 하이테크 경제 부문에서 스파이들이 더욱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첨단기술 개발이 뒤떨어진 중국, 동남아 등지 기업 스파이들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으로 잠입, 암암리에 활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한국도 국가간‘산업스파이 전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과거 기술 수입국에서 기술 생산국으로 국가 위상이 변모하면서 산업스파이들의 국내 유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한국과 일본의 하이테크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한·중·일·대만 등 동아시아 일대가 세계 최대‘산업스파이 전쟁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함께, 중국내 수천개 기업들이 더 많은 고급 기술을 얻기 위해 한·일 등 국가에 스파이 를 파견, 활동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실제로 최근 휴대전화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 등의 액정화면에 활용되는 액정표시장치(LCD)의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던 사람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검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 3일 LCD 제조 및 수출업체인 H사 직원 황모씨 등 5명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로부터 제조 기술자료를 넘겨받아 중국 업체에 유출하려던 B사의 대표 김모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검찰에 따르면 황씨 등 H사 직원 2명은 지난해 10월부터 김씨로부터 고액연봉 제의를 받고 H사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CSTN LCD(보급형 컬러 액정표시장치) 설계도면 일부를 CD로 복사, B사에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H사에 근무하다가 지난 98년 2월 퇴직한 B사 대표 김씨는 중국 T사의 한국대리점 역할을 해오다 H사의 LCD 핵심 기술을 T사에 넘겨줄 방법을 모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중국으로 유출될 뻔했던 CSTN LCD는 휴대폰과 PDA, 의료기기 등에 주로 활용되는 보급형 컬러액정표시장치로 H사는 이 기술을 개발하는데만 60여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기술이 중국 회사로 넘어가 6개월내에 제품을 만들 경우 직접 수출피액액만 34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H사의 한 관계자는 “LCD의 월 생산량의 절반에 이르는 50만∼100만개를 중국에 공급해오고 있는데 만일 이 기술이 중국에 유입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등의 기업들의 무차별적 산업스파이 진출로 인해 한국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각 기업들은 핵심 연구소와 공장에 대한 전방위 감시체제를 구축, 산업스파이의 침투를 원천 봉쇄한다는 방침이다.우선 삼성그룹은 보안관리를 어느 기업보다도 철저히 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연말부터 본사빌딩 1층에 사원증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 스피드게이트(Speed Gate)와 X레이 검색대 등을 설치, 보안망을 한층 강화했다.

이에 따라 삼성 임직원들은 부서장으로부터 전자결재를 받지 않은 플로피디스켓, CD, USB드라이브 등 저장매체나 문서를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한국 수출의 메카이자 반도체 신기술의 산실이기도 한 경기도 용인의 삼성반도체 연구소는 그야말로 ‘요새’를 방불케한다. 외부인이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하는 것은 물론 신분이 확실해야 가능하다. 또 연구원조차도 출퇴근시에는 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것만큼 소지품에 대한 철저한 검색절차를 거친다.LG전자 연구인력이 근무하는 여의도 트윈빌딩 8층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곳에는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홍체인식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는 전언이다, 연구원의 안구를 미리 컴퓨터에 저장해 외부인은 물론 다른 부서의 직원들까지 함부로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삼성의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한국내 유수 기업들이 최근 신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 보안검색의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며 “기업내 기밀이 국내외 경쟁기업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산업스파이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보안시스템의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기업들이 보안을 강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부기밀이 경쟁사로 흘러 들어가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기업들이 회사내 기밀보안에 철저히 대처하고 있지만, 기업의 40% 이상이 회사 기밀 유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전·현직 직원들과 스카웃 등을 통한 산업스파이들의 포섭작전이 먹혀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대만 등 후발업체들이 국내 연봉보다 많은 연봉을 제시, 스카웃을 하거나 직원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기밀을 빼내려 하는 시도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도 중국 등의 산업스파이들이 극성을 부리자 이에 대한 대책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정부는 기업비밀을 외부에 누설한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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