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면 설 연휴를 맞이하는 귀성 행렬이 줄 잇게 될 것이고 시골 부모님들은 모처럼 환해진 얼굴로 자식 손주들을 맞게 된다. 이 순간만큼은 온갖 시름을 잊고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리라. 화목한 밥상머리에 얘기꽃이 피어나며 집안 대소간 안부가 확인되고 나면 다음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치판으로 옮겨질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밉고 관심 없어 해도 살아갈 걱정을 하다 보면 정치 현실에 마냥 눈 감을 수가 없다. 특히 올 설은 불과 4개월여 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서 고향 기초단체장을 비롯한 동네 대표라는 기초의원까지 생판 무관심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정당 공천 문제에 관해서도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이 불을 뿜게 될 것이다.
당초 여야 함께 기초단체의 공천권 포기를 대선 공약으로 삼은 것은 숱한 공천 부작용을 의식하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해묵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결의가 작동한 것이었다. 당연히 유권자들이 환호했다. 이제 지역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 개인 비서 노릇하는 꼴 좀 안 보고, 시장·군수가 해당 국회의원 고향 마을에 선심 사업을 펴거나 꼭두각시 짓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또 무슨 핑곗거리를 찾아서 공약을 뒤집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이 없지 않았다. 그동안 정치권의 말 뒤집기를 신물나게 봐왔던 터가 아닌가. 그래도 이번 약속만큼은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 믿어마지 않았다. 안 되면 최소한 한번이라도 무공천을 시행해봐서 유권자들이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란 신뢰가 있었다.
그런 연유에다 여당 움직임과는 별도로 아직은 박 대통령이 뭐라고 못 박은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 새누리당의 기초단체 공천권 부활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통령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 공약실천을 선언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초의회 정당 공천이 없어진다니까 태도가 돌변해서 새정부 들어 국회의원 지역구 활동 때 얼굴도 안 비친 새누리당 소속 기초의원들이 다시 공천권이 살아날 기미가 확연해지자 새로 국회의원 쫓아다니며 아부하기에 여념 없다는 영남권 소식이 전해진다.
새누리당의 공약파기 명분에는 후보 난립으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 말고도 무공천에 따른 ‘위헌’ 시비가 있다고 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의 ‘정당표방금지’ 위헌 결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결과다. 설령 위헌 소지가 맞다 쳐도 지난 대선 때의 공약집이 검증 없이 표만 의식해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얼마 전 모 언론이 전국의 광역단체장 17명을 대상으로 직접 인터뷰를 통한 기초단체 정당 공천에 대해 질문한 결과 12명이 공천 폐지를 주장하고 4명이 입장을 유보했다. 폐지를 반대한 단체장은 국회의원 출신의 홍준표 경남지사가 유일했던 점이 주목된다.
폐지 주장의 광역단체장들은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논리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중앙정치 개입으로 지역사회가 분열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폐지 반대론자인 홍준표 경남지사는 “기초단체장 공천이 폐지되면 금권선거가 난무하고 공천 없이 선출된 단체장 절반이 구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선거법에, 지금처럼 국민들의 금권선거 감시가 날카로운 시대에 홍 지사의 말이 썩 와 닿지가 않기 때문에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속내가 수상쩍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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