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층 건물서 내려다보면 사찰 내부 훤히 보이는 것도 문제” 신도들, 정몽규 회장집서 시위 … 현대측 “법적으로 문제 없다”재계 회장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성북1동. 지난 24일 이곳에 7∼8명의 중년 남녀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강남에 있는 봉은사 신도들. 한 사람씩 교대로 ‘봉은사’ 깃빌과 자신들의 요구를 쓴 피켓을 목에 걸고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집 대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현대산업개발이 삼성동에 짓고 있는 아이파크가 봉은사 스님들의 수행환경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 현대산업개발과 봉은사가 빚고 있는 갈등을 집중 조명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서울시 삼성동에 건축중인 아이파크가 봉은사 측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 봉은사 측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현대 아이파크와 관련, 강남구청에 ‘아이파크의 유리창에서 반사되는 빛’과 최고층이 48층인 아이파크 건물에서 봉은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스님들의 수행환경’에 많은 장애가 된다는 요지의 민원을 제기한 것. 봉은사 관계자는 “아이파크에서 내려다보면 사찰 내가 훤히 보이게 된다”면서 “특히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인 ‘요사체’가 노출돼 있어 스님들의 수행환경에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내년 5월쯤 입주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최소한 그 전까지 이 문제에 대해 아이파크 측에 분명한 조치를 받아낼 것”이라며 “법적인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봉은사 측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로 한양대 시스템 공학 연구소 측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물을 제시하며 현대 측에 “빛 반사가 심한 유리창을 전면 교체해 달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고 있다. 봉은사 주지스님과 함께 아이파크 문제 공동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도회 안승기 회장은 “빛 반사문제와 관련해 한양대에 조사를 의뢰했다”면서 “그 결과 아이파크에서 반사되는 빛이 계절마다 다른 것으로 나타났고 봉은사에 상당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10여년 전에도 봉은사 바로 근처에 있는 빌딩하나가 25층짜리로 건축하려다가 구청과 봉은사의 법적 소송을 통해 층수를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대 측의 입장은 다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아이파크와 봉은사는 270여m 정도 떨어져 있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건물이 아니다”며 “아이파크는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우리도 스스로 빛 반사에 대한 연구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와 봉은사 측이 제시한 결과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이자, 분양까지 끝난 상황에서 유리창의 전면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요구”라고 전했다. 이렇다할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은 지난 24일 강남구청의 중재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는 동의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 신도회장은 “대화를 했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면서 “현대 쪽에서 봉은사 주지스님을 찾아뵙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선에서 일단 대화를 종결했다”고 전했다.

현대아이파크 관계자도 “구청 관계자와 함께 참석한 가운데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하게 해결안이 마련된 것은 없었다”며 “공사에 따른 법적인 문제에서 하자는 없지만,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러한 가운데 봉은사 신도회 측은 현대산업개발 정 회장의 집이 있는 성북동에 지난 19일부터 매일 출근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도회 안 회장은 “건축현장에 있는 관계자들을 만나도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며 “우리의 입장을 위에 전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지만, 이 문제를 현대산업개발 정 회장이 직접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동으로 들어간 것.안 회장은 또 “개인의 집 앞에서 이렇게 1인 시위를 하는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대 측이 계속해서 무성의하게 나온다면 우리는 새벽이나 밤에도 찾아와 정 회장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흔히 건축과정에서 일조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사례는 많지만, 빛 반사에 대한 문제로 인한 갈등은 그리 흔치않은 경우. 이 때문에 양측의 타협점이 어떻게 마련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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