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모처럼 국민 가슴을 따뜻하게 달군 이른바 ‘김한길 특권방지법’이 정치권에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김 대표는 설 연휴를 끝낸 지난 3일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제정과 국회 윤리감독위원회 설치를 공식 제안했다. 그가 발표한 정치혁신안 내용 가운데는 정치인들의 ‘돈줄’이라는 출판기념회에 관한 규제 방안도 들어 있다.

또 비리 의원을 유권자가 직접 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했고, 의원 및 의원실 관계자들의 선물과 향응, 경조사, 출장 등을 엄격히 규제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자고 제안했다. 국민 모두가 환영해 마지않을 김한길 대표의 이 같은 제안은 본인 말대로 “국회의원의 시각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으로 국회의원을 바라본 결과를 온전히 수렴한 것”이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빚어지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러시는 정치자금법을 피해서 편법으로 목돈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란 점에서 너도 나도 판을 벌이는 것이다. 명백한 정치권 지하경제였다. 사실상의 정치자금 모금이면서 정치자금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정치권 인사들의 출판기념회는 드러내놓고 수수할 수 있는 뇌물 통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모금 한도도 없고 회계보고를 해야 하는 의무도 없다. 책을 무한정 많이 사고 아무리 책값을 많이 내도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선관위도 특별한 제보나 증거 없이는 단속을 안 한다. 이러니 힘깨나 쓴다는 여야 실세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들기 마련이다. 눈도장 찍은 뒤 건네는 봉투 안에 돈이 얼마인지는 본인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돈줄을 차단하고 부패 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나선 김한길 대표에 대해 새누리당은 집권당 처지에서 군소리 낼 여지가 안 보였다. 새정치를 내세운 안철수 의원 측은 오히려 기선을 제압당한 셈이어서 더는 딴소리 할 입장이 못 됐다. 그런데 거꾸로 민주당 내에서 반응이 시큰둥해 보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혁신안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민주당에 더 시급하고 중요한건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을 되찾아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야당이 지지도를 높이는 데 있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춰 국회의원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정치인들의 출판회 수익에 대한 ‘검은돈’ 논란을 종식시키자는 것만큼 국민호응을 얻을 만한 일이 더 없을 텐데 말이다.

딴소리하는 민주당 의원들 혹시 국회의원의 공항 귀빈실 이용을 못하게 하는 게 아까워서 그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김 대표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여도 유권자들이 의심을 안 할 수 없는 시기다. 지난 대선 때 여야는 서로 앞 다투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의 제한을 포함한 많은 국회의원 특권의 폐지 약속을 했었다. 세비 30% 삭감 약속도 있었으나 아직까지 초반 논의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폭염 속 한줄기 소낙비 같은 ‘김한길 특권방지법’에 마음이 쏠리면서도 우려와 회의감이 앞서는 것은 안철수 위기를 맞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또 코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용으로 내놓은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 딴지거는 소리에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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