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가라앉은 듯 보였던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에 대한 야권의 ‘특검’ 주장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1심 무죄판결을 ‘충격’으로 표현한 권은희 일선경찰서 과장의 기자회견을 도화선으로 해 새로 불붙었다. 민주당은 권 과장의 언론 접촉 과정이 경찰관으로서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 이인선 경찰청 차장에게 ‘야비한 짓’으로 규정했다. 징계를 시사하는 공개 협박이라는 주장이다.
삼권분립의 민주국가에서 사법부 판단을 ‘충격’ 사태로 비난하는 행위가 그것이 정의인 양 받아들여졌다. 재판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면 사법 정의가 살아 있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토해내고 판결이 불리하게 내려지면 그 즉시 재판부를 권력의 시녀로 내모는 고약한 버릇이 야당 전유물이 된 맥락을 한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
모든 조직사회에는 조직문화가 숨 쉬고 있다. 특히 위계질서가 선명한 10만이 넘는 경찰 조직 내에서 소위 ‘권은희 사태’ 같은 것은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런 파란을 일으키고도 시골 경찰서 근무나 그 외 방법으로 쫓겨가지 않고 건재해 있는 게 오히려 시절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은희란 사람이 앞으로 야당 정치에 뜻을 둔 것 같다는 말이 정설처럼 나도는 배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조직문화에 비춰 경찰을 그만 두고 다른 길로 나설 어떤 특별한 계획과 별다른 꿈 없이 단순한 정의감만으로는 권은희 과장이 보이고 있는 용기(?)나 돌출행동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경찰 내외부에 확산돼 있다. “오로지 증거를 근거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것”이라고 말한 재판부를 ‘충격’으로 공격하고 나선 독불장군식 행태에 경찰 수뇌부가 침묵하는 태도가 도리어 ‘충격’일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받는다.
민주당은 지난 한 해 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던 국정원 사건 특검 도입에 다시 올인해 매달려야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제1야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안철수 신당이 태동도 하기 전에 호남민심까지 안철수 쪽으로 돌아선 연유가 뭐였는지 도통 모르는 것 같다. 민주당 스스로 생각해도 국정원 댓글 효과가 대통령선거의 당락을 갈라놓았다고 보지 않을 텐데 새정부 들어서고 온 1년간을 정권 발목을 잡고 늘어져 아무 일도 못하게 한 점이 텃밭 민심마저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걸 깨닫게 된 김한길 대표가 민생 현안에 주력할 것을 약속하고 ‘국회의원 특권방지법’ 같은 정치 개혁안을 발표해 안철수 쪽 기선을 제압하면서 처음으로 호남지지율이 안철수 신당을 앞질러 살아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면 유권자들 비위에 맞는 야당 정치가 어떤 것인지 자명해졌다. 아직 재판 진행 중인 사안을 1심판결부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법원을 뒤흔드는 행태가 꼼짝없이 한심해빠진 야당 수준이다.
과거 뇌물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나 저축은행 뇌물사건의 민주당 국회의원 2명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았을 때 민주당이 법원에 했던 입 발린 말들이 모두 낯간지러울 노릇이다. 결국 민주당은 ‘권은희 마법’에 걸려 겨우 회복세에 들어섰던 호남 고토 민심에 다시 찬물을 쏟아붓고 말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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