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에서 ‘친노’의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최민희 의원이 얼마 전 모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외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돼 놀라웠다. 최 의원은 “진보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절제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예의를 지키는 게 진보의 미덕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이른바 친노는 대선 패배 이후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언론 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을 거친 최 의원은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주장하면 됐는데 이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말도 했다. 또 “타협이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지만 전에는 (타협을) ‘줏대 없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더 눈에 띤 대목은 “1987년 6월 항쟁의 사례를 보면 경제가 좋아져야 진보가 집권할 기회가 온다”며 “‘통일 대박론’을 실현하고 50년 먹거리를 만들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2017년 대선에서 민주개혁 세력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그의 처방론이었다. 그 한사람이 진보세력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진보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고무적이다.

최 의원의 과거 이력으로 봐서 진보의 통렬한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정관념에 변화가 생기는 것만은 사실인 것이다. 지금껏 대한민국 진보주의는 정치공학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종북(從北)주의’로, 아니면 최소한 ‘친북주의’로 공격을 받을 만큼 북한에 우호적이었다. 과거 민주화 세력으로 보호색을 둘러친 친북·종북세력이 민주화 이후 ‘진보’를 표방하면서 진보세력의 이런 북한옹호 기류는 당연시 돼왔다.
이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 독버섯처럼 파고들어 ‘종북’의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 진보주의 비극의 역사였다. 친북세력의 포위망이 건전 진보의 숨통을 잡고 있었던 게다. 4개월 동안 진행되고 공소사실 전체가 유죄로 판단된 이석기 재판 과정만 해도 그렇다. 재판은 준비기일 4번을 포함해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4번씩 50번 열렸다. 재판 때마다 이석기 지지자들은 마치 ‘연예인 팬’같았다고 한다.

그만큼 재판을 알뜰히 지켜보며 이 의원 표정에 호응하고 응원했다는 얘기다.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한 이석기 피고인이 최후진술 때는 “지난 5개월간 재판을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이끌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이례적 수사어를 구사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공정했다던 재판이 판결에서 중형이 선고되자 일거에 “꿰맞춘 판결”로 난자됐다. 이 땅 진보주의 행태가 거의 이런 식이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생각들을 옥죌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를 가장한 세력들의 발호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수호하는 길로 나서야 옳은 진보이다. 진보주의의 급진적 혁신적 관념이 절대적 개념이 아닌 것은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따른 강한 상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의 진보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뜻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런 절제 할 줄 아는 진보, 예의를 지키는 진보세력을 심하게 우려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 진보주의가 친북, 종북세력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과제가 지금 코 밑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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