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가정법원에서 이례적인 판결이 있었다. 판결 내용인 즉, 원고와 피고 모두가 18년 동안 별거생활을 하면서 혼인관계 회복을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바가 없다면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어느 한 쪽에게만 있거나, 양쪽 모두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쪽에게 대등한 정도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이혼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 이 부부는 혼인한 후 7년만인 1997년에도 이혼소송을 했었다.

그러나 남편이 제기한 이 소송에서 당시 재판부는 남편이 고부갈등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한 책임과, 회사의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었다는 사실 등을 이유로 원고를 유책배우자로 인정해 남편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일이 있었다. 이후 부부는 각자의 생활을 하며 법적으로만 혼인관계를 유지한 채 살아오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위와 같은 이유로 대구가정법원은 이혼신청을 받아들였다.

혼인은 당사자들간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이혼도 원칙적으로는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김태희와 결혼하고 싶어도 김태희가 나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 결혼은 완벽하게 불가능하지만, 이혼은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우리 민법에서는 몇 가지의 요건을 둬 당사자 간 이혼의 의사가 합치하지 않더라도 이혼이 가능하게끔 해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혼인청구소송은 없어도, 이혼청구소송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재판상 이혼사유라고 한다.

일방에 책임이 있을 때 재판상 이혼 가능

우리 민법에서는 배우자의 부정행위, 배우자나 배우자의 가족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 부모가 배우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가 고의적으로 가정을 떠나버렸을 경우, 배우자의 생사를 3년 이상 알 수 없을 때, 기타 혼인을 유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재판상 이혼 사유들의 공통점은 부부 중 일방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 전제에서 부부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줄 경우,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기까지 불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파탄에 상당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부부 중 일방을 ‘유책배우자’라 하는데, 이 유책배우자가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재판상 이혼을 요구하는 것을 우리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 의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상대방 배우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란, 간통한 배우자를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게 하고, 그로인해 의사자격을 박탈하게 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찾아온 유책배우자를 냉대해 정상적인 부부생활의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뜻한다.(대법원87르202판결)

위에 말한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 이미 부부간의 혼인의 실체가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을지라도, 우리 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실제로 2004년 대법원은 부부의 별거기간이 28년에 이르고, 남편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오랜 기간 동안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며 아들까지 두고 있어 남편이 다시 배우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안에서도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가 있다.(대법원2004므1033판결)

혼인계속의사 없이 관계 지속… 이혼 가능

그러나 2009년 12월 24일에 이르러 대법원은 기존의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태도에 변화를 두기 시작한다. 아내가 혼인 12년 뒤 남편과의 갈등 끝에 가출해 11년이 넘게 서로 떨어져 각자의 주거지에서 별개로 생활하며, 2007년 초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면서 다리가 기형인 딸까지 출산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아내의 이혼청구를 인정해준 것이다. 법원은 비록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은 아내에게 있으나, 남편이 아내와의 관계정상화에 그다지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과 그러한 이유로 서로의 책임이 경합된다고 판단되는 점, 부부간의 별거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아내의 책임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현재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기형아인 아이의 보살핌과 간호가 절실하다는 점 등을 살핀다면, 현 상황에 이르러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책성에 대하여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곤란하며, 남편의 혼인계속의사에 따라 현재와 같은 파탄상태를 유지할 경우 아내와 아내의 아이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아내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인다고 했다.(대법원 2009므2130 판결)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의 변화는 부부관계의 파탄을 이유만으로 이혼이 인정될 경우 사회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처가 쫓겨나듯이 이혼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채택되었던 유책주의가 현대에 이르러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며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부부관계를 강제로 유지하게 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추세다. 물론 아직까지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인정하지 않는 기조 하에, 예외적으로 유책성에 상관없이 파탄을 이유만으로 이혼을 승인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정도이다. 서두에 말한 대구가정법원의 이혼사건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판결이라 볼 수 있다. 다음에는 이혼사건에서의 실무에 있어서 주요 분쟁사례를 살펴보겠다.  

  <정기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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