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핵심 정보를 캐내라!’냉전시대는 끝났지만, 국가간 정보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엔 기업간 경쟁사의 핵심기술을 빼내는 산업스파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미국 CIA에서 24년간 비밀임무를 수행한 베테랑이 첩보세계를 낱낱이 공개한 ‘CIA 주식회사(수희재 펴냄)’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급첩보서비스’(SIS)멤버로서 CIA의 전설적인 비밀 훈련시설인 ‘농장(Farm)’의 교관을 역임한 F.W. 러스트만이 책을 통해 밝힌 비즈니스 첩보술과 그에 얽힌 일화 중 일부 내용을 담았다.

제너럴모터스와 포드의 교훈

자동차업계에서 유명한 일화중 하나가 바로 제너럴모터스의 시보레 노바(Chevy Nova)사건이다. 시보레 노바는 제너럴모터스가 60년대 출시한 차다. 그러나 이 차는 푸에르토리코와 라틴 아메리카에선 전혀 팔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름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노 바(no va)란 스페인어로 “가지 않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포드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모델을 잇달아 내놓은 상태에서 제너럴 모터스의 실패 사례를 반복했다. 포드가 내놓은 차량은 피에라(Fiera, 스페인어로 ‘추한노파’), 코메트(Comet)의 칼리엔테(Caliente, 스페인어 속어로 ‘매춘부’), 핀토(Pinto, 포르투갈어로 ‘작은 남자의 고추’)였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마케팅을 했지만 외국 시장에 자동차를 출하하기 전 그 누구도 상품의 외국 이름을 번역해 보는 수고를 하려 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또 어떤 미국 기업은 정성 들여 만든 사업 제안서를 비싼 돼지가죽 표지로 싸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비 고객에게 제출했다.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와 돼지 관련 제품을 종교적으로 금기시한다. 이 거래가 성사될 수가 없었음은 말하나마나였다.

산업스파이 전형, GM 대 폭스바겐의 첩보사건

1990년 초반 호세 이그나시오 ‘이나키’로페스(Jose Ignacio ‘Inaki’Lopez)는 GM 사원 중에서도 걸출한 존재였다. 10억달러의 공급 비용 절감에 성공하고 자동차 조립 라인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조달 부장의 지위에서 북미 사업지사장으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993년 3월, 로페스는 갑자기 GM을 그만두고 심복 부하 여섯 명을 데리고 연봉 160만 달러로 폭스바겐의 중역으로 들어갔다. 이는 GM에서 받던 급료의 약 다섯 배, 독일 중역이 받는 통상적인 보수를 훨씬 상회하는 액수였다. 그의 이탈은 미국 기업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고 GM과 폭스바겐 사이에 엄청난 민사소송이 벌어졌다. 로페스의 이탈은 폭스바겐이 GM의 회사 기밀을 훔치려는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 GM의 주장이었고,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사실이었다.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본바 폭스 회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흐가 6개월에 걸쳐 직접 로페스를 육성하고 변절을 유도했음이 드러났다.

이는 산업스파이의 목적으로 변절을 유도한 전형적인 예다. 피에흐가 처음 로페스를 눈여겨본 것은 아마 로페스가 유럽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던 90년대 초반일 것이다. 당시 피에흐는 GM의 유럽 자회사이자 폭스의 강적인 아담 오펠 AG의 신제품 계획에 대한 정보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 로페스를 점찍은 피에흐는 상대의 변절을 유도하는 리크루트 작전의 교과서를 그대로 답습했다. 피에흐는 로페스를 육성하기 전에 그의 강점, 약점, 성격, 기질, 승진에 대한 열망 등을 알기 위한 사정기간을 두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피에흐는 로페스와 개인 면담을 추진했고, 이후 많은 만남을 통해 상호간 우호와 신뢰의 분위기를 쌓았다. 3개월 정도 만남이 지속된 후 피에흐는 로페스에게 금전 및 사내에서의 권력을 대가로 GM의 최고 기밀을 요구했다.

이 제의는 로페스가 실제로 이탈하기 3개월 전에 이루어졌고,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여섯 명의 동료를 함께 변절시키는 임무였다. 결국 GM의 핵심자료를 모은 서류뭉치를 들고 로페스는 6명의 동료들과 함께 GM을 사직하고 독일로 떠났다. 그러나 로페스는 자신들의 증거를 없애는 작업을 소홀히 한 탓에 분쇄기로 처리하지 않은 서류뭉치가 발견됐다.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고 ‘폭스가 GM에 현금 1억달러 지불’, ‘수년간 10억달러 상당의 GM 자동차 부품 구입’을 골자로 하는 협상안을 통해 사건이 마무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묘한 관계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대해 가장 공격적인 경제스파이를 시도하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스파이 행위가 특별한 것은 양국간의 문화적,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강한 유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만큼 그 생존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동맹국은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만큼 미국으로부터 안보와 첩보의 지원을 받는 나라도 없고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에 의존하는 나라도 없다.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경제스파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스라엘 국방부가 나중에 ‘LAKAM(특무대)’으로 발전하는 조직을 만들 때부터였다. LAKAM의 주요임무는 미국의 방위 시설에 기술적·인적으로 침입, 주로 과학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이스라엘 국방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밖에 경제스파이를 운용하는 이스라엘 정보 조직으로는 대외 첩보기관인 모사드(Mossad)와 국방부 내에 신설된 말마브(Malmab,공안국)라는 조직이 있다. 이스라엘 경제 스파이의 표적은 대포의 포신, 대기권 재돌입 미사일용 도료, 항공 전자공학, 미사일 원격 측정법, 항공기 통신시스템 관련 기술 등이다. 1986년 세 명의 이스라엘 공군 장교가 항공 감시장비 관련 5만 페이지에 이르는 기술 문건을 미국의 국방 청부기업인 레콘 옵티칼사로부터 훔쳐내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적어도 체포되기 1년전부터, 이들 장교는 공적인 연락관계를 이용하여 레콘 옵티칼사의 자산 정보를 이스라엘의 경쟁 기업인 엘 옵 일렉트로옵틱스 사에 넘겨주고 있었다. 뒷날 중재재판소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배임’의 비합법활동이라 판결하고 그로 인해 입은 피해액 3백만 달러를 레콘 옵티칼 사에 지불하라고 명령했지만, 레콘 옵티칼사는 이 절도 때문에 도산의 위기에 빠졌다.

이 훔친 과학기술은 이스라엘 최초의 항구적 정찰위성인 오페크3의 건조에 이용됐다. 미국의 방위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세적 첩보 수집의 또 다른 예로는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 소재한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공장에서 F-16비밀 청사진을 훔친 사건, 그리고 미국의 클러스터 폭탄 기술을 국외로 수출하려고 했던 사건이 있다. 두 건 모두 80년대 초에 일어났고, 이스라엘 공작원이 체포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제스파이 활동은 중동에 조속히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정보원 보호를 소홀히 해 중국 첩보망을 잃은 대만

이름도 얼굴도 없는 정보원이 정치적 편의에 희생되고 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대만을 목표로 발사된 중국 미사일 사건이다. 이를 전쟁 도발과 진배없다고 여기는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대만 국방부는 별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설득하려고 했다. 그래서 미사일에 탄두가 장착돼 있지 않고 탄도의 정밀도를 기록하는 장치만 들어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중국의 정보기관에 정부 또는 군부의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대만의 스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탄두와 전자 장치는 고도의 비밀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알 필요가 있는’극소수의 고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3년간에 걸친 MSS(국가안전부)의 탐색결과 리우 리앤쿤 소장, 연락책을 맡은 리우 장군의 애인, 종범인 샤오쩡숑 대좌가 체포돼 스파이 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리우 장군과 그 동료들을 잃은 것은 중국내의 대만 스파이망에 헤아릴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 이렇게 큰 실수가 일어난 과정은 1996년 3월 16일 대만 총통선거 2주일 전 중국에서 세발의 M9 미사일이 발사되어 대만 남부의 최대의 항만도시 카오슝에서 56㎞, 그리고 북부의 대만 제2의 항만도시 킬룽에서 37㎞거리의 해상에 떨어졌다. 미사일 훈련이 한창 진행되는 사이에 리우 소장은 미사일 탄두가 공포라는 것, 그리고 추가로 미사일의 배치상황, 당시 중국군의 배치와 전력 등을 대만에 몰래 통보했다.

대만 정부가 미사일이 위험하지 않다고 발표한 것은 유권자를 대만의 일방적 독립 선언 지지파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였다. 이는 대만 첩보기관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뤄진 순전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이 민감한 정보의 발표로 리우 소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을 인식한 당국은 소장을 중국에서 대만으로 탈출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대만의 관료주의적 번다함과 중국의 신속한 방첩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 계획은 실행에 옮기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또 이 사건을 중국정부가 대대적으로 조사해 대만 공작원의 상당수가 처벌받았다. 결국 대만 국방부가 정치적동기로 발표한 성명으로 인해 귀중한 정보 자산이 상실된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