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룸살롱 업계는 ‘암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으로 이미 ‘초토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 이미 폐업을 결정한 업주들은 어떤 업종으로 변경할 것인가를 두고 내심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부 업주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며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사회생’의 카드를 빼든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픈빨’이라는 것을 세우게 된다. 한편 나가요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른바 ‘공사빨’을 세워 ‘인생역전’을 해보겠다는 것이 새로운 전략의 하나로 등장했다. ‘매출 무풍지대’ 룸살롱 업계의 요즘 고민과 신풍속도를 취재했다.

‘사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한때 저녁 어스름만 되면 휘황찬란한 불빛을 밝히던 강남 지역의 미용실들이 죽을 쑤고 있다. 나가요걸들의 ‘활동시간’이 되면 일손이 바쁠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어두운 사막을 방불케 하고 있는 것. 미용실 매물이 쏟아져 나왔고 남아있는 업소들조차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나가요걸들이 점차 룸살롱 업계를 떠나고 있다는 이야기며, 또한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아가씨들은 소위 ‘공사’를 통해서 마지막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한다. 공사란 룸살롱에서 만남 돈 많은 남성들에게 작업을 걸어 상당한 양의 명품과 승용차, 심지어는 오피스텔까지 얻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비록 당장은 현금을 얻지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공사의 ‘마력’이라고 말한다.

강남 T룸살롱에서 근무하는 K양을 통해 ‘공사의 법칙’을 들을 수 있었다. “저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남자다 싶으면 일단 공사가 먹힐지 안먹힐지부터 판단해야죠. 그저 월급이나 받아먹는 회사원들은 안중에도 없구요,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이나, 웬만한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유부남들이 그 첫 번째 대상이죠.”물론 나가요걸들도 초기에는 순수한 ‘사랑’으로 위장한다. 처음부터 명품이며 승용차를 살 달란다고 사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 따라서 남자가 룸살롱이 아닌 외부에서 만나자고 해도 처음에는 ‘가게 규칙상 안된다’며 은근슬쩍 발을 뺀다고. 이렇게 하면 애가 단 남성은 보다 적극적인 구애를 하게 되고 나가요걸 역시 은근슬쩍 ‘사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그 첫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이렇게 외부에서 만나는 것이 한 두번 진행되면 그때부터 서서히 나가요걸의 ‘마수’가 드러난다.

첫 번째로는 ‘후줄근한’ 옷을 입고 나가는 것. 룸살롱의 화려한 의상과는 달리 약간의 촌티마저 느껴지는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나가 ‘요즘 돈을 못벌어 옷을 못산다’며 남성의 동정심리를 자극한다. 이렇게 하면 ‘열에 아홉’은 나가요걸의 손을 잡고 명품점으로 향한다고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남자와 만나 일찍 헤어지는 것. 남성들이 밤늦게까지 있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예전에 택시기사에게 한번 당할 뻔했다. 요즘에는 택시 타기가 무섭다. 자가용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이라며 운을 뗀다. 이렇게 하면 남성은 덜컥 승용차를 사주게 된다.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최후의 하이라이트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얻는 것이다. 점차 남성이 자신에게 빠져든다는 것을 확인한 후, 느닷없이 ‘지방으로 가야한다’고 엄포를 놓는 것. 물론 명분은 ‘가게가 장사가 안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이렇게 하면 경제적 여력이 되는 대부분의 남성은 선뜻 오피스텔을 얻어준다고 한다. 물론 남성 스스로는 ‘이제 마음 편히 애인하나 두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대목은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이기도 하다. 이렇게 명품과 승용차, 오피스텔을 얻은 여성은 느닷없이 잠수를 하게 되는데 그간 받았던 것들을 모두 현금화해서 잠적하게 된다.

나가요걸들이 ‘공사빨’을 세우는 반면 업소들은 ‘오픈빨’을 세우고 있다. 오픈빨이란 처음 업소를 오픈하면 입소문을 타게 되고, 손님들이 반짝하고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최소한의 돈으로 인테리어를 재단장하고 분위기를 바꾸면 주당들이 찾아들기 시작한다는 것. 하지만 오픈빨이 먹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요즘은 수명이 더욱 짧아져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라고 한다. 따라서 오픈빨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큰 돈을 만지기는 힘들다. 어차피 새롭게 다른 곳에서 업소를 열려면 또 그만큼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주들은 이 기간이나마 장사가 되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저 손놓고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빨과 오픈빨. 한때 ‘밤문화의 황제’라고 불리던 룸살롱과 나가요걸들의 쓸쓸한 퇴장을 의미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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