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첫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했다. 안 대표는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6월 지방선거의 주요 이슈인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한 영수회담 수용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과거 당내 공천문제와 관련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말했던 점을 겨냥해서 “그렇다면 이번 경우에 국민을 속인 사람은 누구냐”고 일갈했다. 결자해지론도 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 파기를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최 원내대표는 “잘못된 약속에 얽매이기보다는 국민께 겸허히 용서를 구하고 잘못은 바로잡는 것이 더 용기 있고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수많은 후보가 난립해 선거를 혼탁케 하고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책임 방기”라고 했다.

그는 정당공천의 폐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경선과정의 금품수수 등 부정이 한 건이라도 적발된 후보는 영구히 새누리당 공직선거 후보로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밝혔다. 국회 대표연설에서 최 원내대표와 안 공동대표가 주고받은 공방은 대충 이랬다. 누구 말에 손을 들어줄지는 유권자 몫이다.

생각하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역시 ‘정치는 참 알다가도 모를 판’이란 냉소와 조소일지 싶다. 기초공천폐지 공약을 뒤집은 새누리당이 “무공천은 위헌 소지가 있고 정당정치의 포기”라며 야당에게 공천을 유혹하는 걸 보면서 정치가 생물이라기보다 ‘괴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괴물 정치 생각은 안철수 정치를 보면서 더 심해졌다.

통합신당을 선언하기 불과 며칠 전까지 안철수 의원은 전 국민을 상대로 양당 체제를 혁파하는 독자 세력화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의원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TV속 함박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 밀실통합 선언을 할 때는 그가 가는 곳, 서 있은 자리마다 반드시 지역 구도를 타파한 100년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했던 입가의 침도 마르기 전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통합신당공동대표 된 직후 ‘민생 대박’이니 ‘서민 대박’이니 하면서 스스로 민생을 챙기겠다는 선언은 간곳없이 포플리즘 공약으로 지목 받는 기초선거 정당 공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 반응이 없자 머쓱해서 자신이 청와대에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갖는 듯 보인다. 청와대가 참말 그를 무시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은 선거에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 신분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공직선거 공천문제로 회담하자는 건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라는 요구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말 바꾸기를 능사로 삼는 안철수 정치에 청와대가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일 수 있다. 안 공동대표가 직접 청와대를 방문해서 대통령 면담신청을 하는 대목에서는 선동가의 일면이 여과 없이 나타나는 듯 했다. 사연이 어떠하든 간에 이 시점에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중요한 건 청와대의 무시가 아니다. 중도층을 중심으로 안철수 정치에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제 적잖이 그를 무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거짓말에도 급수가 있는 법이다. 뿌리째 바뀌는 ‘총론적’ 거짓말이 있고, 가지 정도 바뀌는 ‘각론적’ 거짓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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