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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아이의 출생신고 할 수 있도록 법 개정 필요

서울 하월곡동에 사는 김모(57세)씨는 출생신고를 하러 서초구청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김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조모(47세)씨와 사실혼 관계에서 딸을 낳았다. 미국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미국에서 살다가 조씨와 헤어지고 딸과 함께 몇 년 전에 국내로 입국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딸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학교도 편법으로 다니고 각종 사회보장수급권도 제대로 향유하고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을 통해 아버지와 딸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다.

국적법에 의하면 출생 당시 아버지나 어머니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미국에서 출생한 김씨의 딸은 미국 법에 의해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법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자이기도 하다.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들 중에는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기 전에 잠적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올리려면 출생신고가 필요한데, 혼외자의 경우 생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주민센터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사례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면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예방접종도 할 수 없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서는 혼인 외 출생자는 신고 의무자를 ‘어머니(생모)’로 규정해두고 있다. 생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생모의 동거 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가 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모와 연락이 끊어진 경우에는 방법이 없어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아이를 버리고 간 엄마가 친절하게 아이가 태어낸 병원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가족관계등록법은 여러가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전자 검사 등 친자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한다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시간이 더디다. 결국 아버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김씨는 이와 같은 불편함을 호소하다가 최근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혼인 외의 자녀에 대한 인지절차를 통해 딸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서초구청을 방문했다.

그런데, 서초구청 가족관계 담당공무원이 서초구청에는 관할이 없다고 하면서 등록기준지나 주민등록지 구청에서 신고를 하라고 했다. 이에 김씨와 동행했던 변호사가 현재지인 서초구청에서 신고서를 제출하겠다고 하자 “왜 변호사가 일을 키우려고 하느냐, 다른 구청에 가서 신고를 하라”고 거듭 요구하며 “서울가정법원에 가서 문의를 하는 것이 빠르다”고 하는 등 거듭 신고 접수를 거부했다.

이에 김씨와 동행한 변호사가 "서울가정법원과 대법원 법원행정처 가족관계등록업무 질의회신 부서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한 결과 혼인 외의 자에 대한 인지신고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하고 신고서가 수리되지 않으면 관할 가정법원에 그 처분에 대한 불복을 신청하고 가정법원의 결정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통보받고 서초구청에서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초구청에서 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불수리처분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법 제109조에 의한 불복신청을 하기 위해 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하니 신고서를 접수하고 불수리 사유가 있으면 불수리처분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팀장이라는 공무원은 접수를 받은 담당자에게 “접수를 받고 불수리 처분을 해주라”고 지시했다. 김씨가 출생신고서를 작성한 후 담당자에게 제출하자 팀장은 담당자에게 “시간을 끌기 위해 불수리 처분을 바로 하지 말고 질의회신을 넣어서 시간을 끌라”고 김씨 및 김씨와 동행한 변호사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외국인(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인지절차에 따라 아버지가 인지신고를 통해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공무원이 신고서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씨의 사례도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아버지가 외국인인 혼인 외의 자에 대한 인지(인지신고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하고,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이 불수리 처분을 하면 가정법원에 불복신청을 해 법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 기입 처분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다.

성 문화가 개방되면서 혼인 외의 자가 증가하고 있다. 생모가 출산 직후 사라지거나 출생신고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현재 서초구청과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을 개정하거나 현행 법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공무원이 사실상 거부할 경우 버려지는 아이는 증가할 것이다. 입양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아이를 버리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당분간 개선될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악성 민원인과 정당한 민원인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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