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의 여전사가 다시 돌아왔다.’세계챔피언이 된 뒤 프로모터와 갈등을 빚으며 우여곡절 끝에 1차 방어전에 성공했던 이인영(33). 그러나 ‘술에 취해 산다’‘훈련을 불성실하게 했다’‘돈을 밝힌다’는 악성루머까지 퍼졌다. 결국 괴로워하던 이인영은 지난해 11월 경 돌연 링을 떠나 잠적했다. 잠적이 길어지면서 이 달 초 그녀의 세계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인영의 컴백은 오리무중이었다. 심지어 그녀를 가르쳤던 김주병 관장까지도 ‘이인영이 복싱을 그만 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인영이 150일이 넘는 오랜 방황을 마치고 다시 사각의 링으로 돌아왔다.

지난 6월 22일 챔피언이 되기까지 구슬땀을 흘리던 산본체육관에서 만난 이인영은 예전의 투지 넘치던 모습 그대로였다. 복싱을 그만 둘 각오로 링을 떠나 휴대폰까지 꺼둔 채 혼자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지를 여행했던 이인영은 “TV 자막을 통해 타이틀 박탈 소식을 접하고 괴로워했는데 나보다도 관장님이 마음 아파할 것 같아 전화를 했다”며 “다시 시작하자는 관장님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 링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다시 링으로 돌아오게 해주신 김주병 관장에게 감사한다”는 이인영은 갈등을 빚어던 프로모터와의 문제는 김 관장에게 일임하고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또 “2차 방어전을 통해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반드시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 링에 다시 복귀했다. 첫날 훈련할 때 심정은.▲오랫동안 방황해서 인지 힘들고 어색했다.

- 훈련은 어떻게 하는가.▲매일 새벽 5시 30분에 산본외곽 10㎞ 정도를 달리고 있다. 오후에 3시부터 5시까지 링에서 훈련하고 있다.

- 잠적기간 어떻게 지냈나. ▲처음 떠났을 때는 여행만 했다. 2~3개월이 지나면서 답답함이 많이 들었고, 혼자 있으면서 많이 답답했다. 전라도, 경상도 등지를 돌아다녔고 강원도에서 지낸 시간도 길었다.

- 잠적하게 된 이유는. ▲게임 전까지 대전료 문제로 인해 게임자체가 좋은 게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술에 절어 산다’, ‘훈련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둥 나를 비하하는 악성루머가 돌았다. 심지어 마치 내가 돈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폄하하는 말까지 들었다. 롱런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권투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정말 그만 둘 생각을 갖고 떠났었다.

- 잠적기간 중 아버지 묘 이장 때는 집에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들었다. ▲정말 가고 싶었다. 아버지 묘소를 이장하는데 어찌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타이틀 박탈 소식을 듣고 가지 못했다.

- 박탈 소식을 뉴스로 접했는가. 당시 심정은.▲TV 자막을 통해 흘러가는 뉴스를 보고 알았다.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관장님에게 정말 죄송했다.

- 언제 링에 복귀하겠다는 결심을 했는가.▲박탈 소식을 듣고 나서다. 술 한 잔 마시고 관장님께 죄송해 밤에 전화를 걸었다. 그 때 관장님이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너무 너무 고마웠다.

- 전화이후 광주에 있는 집으로 갔나.▲ 강원도에 있다가 곧바로 광주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갔다. 창피하기도 해서 문밖 출입은 하지 않았고 며칠 뒤 산본으로 이사했다.

- 프로모터와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생각인가.▲솔직히 선수는 권투만 잘하면 모든 것이 되는 줄만 알았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이 많았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관장님께서 모든 것을 맡고 나는 다시 운동만 열심히 할 생각이다.

- 타이틀은 어떻게 결론 났는가.▲박탈은 아니라고 결정 난 것으로 안다. IFBA 회장님과 권투협회 관계자 분이 구두상으로 박탈은 아니며 조만간 방어전을 치르기로 약속했다.

- 그러면 방어전은 언제 치르게 될예정인가.▲아직 일정이 잡혀진 것은 없다. 10∼11월경에 치를 것으로 본다.

- 어떤 선수와 대결하고 싶은가.▲유럽스타일의 기술이 뛰어난 선수와 대전했으면 한다. 원정도 상관없다. 한국에서 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많다. 원정을 가서 경기를 하는 것이 부담이 더 적을 것 같다. 또 악도 생겨 더 잘할 것 같다.

- 어머니하고 같이 살고 있다던데.▲광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올라왔다. 곁에서 늘 챙겨주신다. 그런데 내가 눈뜨면 같이 눈뜨시고 화장실 갈 때도 어디에 가는지 신경을 쓰셔서 약간 불편함이 있다.(웃음)

- 복귀한 뒤 목표는.▲가장 큰 목표는 2차방어전이다. 여기서 잘해야 명예가 회복된다고 본다. 그리고 챔피언으로서 롱런을 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나로 인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 결혼 생각은 없나.▲아직 없다.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니다. 다만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김주병 관장 “프로모터와 조속 타협할것”

이인영을 발굴하고 세계챔피언으로 키운 산본체육관 김주병 관장은 “인영이가 방황하는 동안 못 먹던 술까지 마시며 괴로워했었다”며 “본인이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해 새롭게 재출발하려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또 “링을 떠나 있어 몸 상태를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한 상태”라며 “선수를 위해서 프로모터와 조속히 타협해 타이틀 방어전에 전념하고 싶다”고 밝혔다.

- 이인영에게 언제 연락왔나.▲타이틀 박탈 소식이 언론을 통해 나왔을 때다. 그 때 정말 슬프고 아쉬워 술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인영이에게서 울면서 전화가 왔다. 다시 시작하자며 당장 돌아오라고 했다.

- 잠적기간이 길어지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나는 본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인영이가 떠난 뒤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해 지금 소주 1병은 그냥 마실 정도다. 트럭운전 일도 하고 알코올에 중독되기도 했던 인영이는 밑바닥에서 그야말로 힘겨운 노력 끝에 탄생한 챔피언이었다. 아쉬움이 정말 컸었다. 타이틀 박탈기사가 나왔을 때는 인영이에게 “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핸드폰 메시를 남기기도 했다. 돌아와서 기쁘고 무엇보다 복싱을 다시 하겠다고 해서 기쁘다.

- 현재 이인영의 몸상태는 어떤가.▲술을 마시고 다녀 걱정을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척 좋은 상태다. 본인도 방황을 하면서 운동을 계속했다고 했다. 본래 체력이 좋은데 몸 관리를 잘한 것으로 보인다.

- 본인은 10~11월 정도에 방어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무래도 10월은 힘들 것 같다. 체계적인 훈련을 하지 않은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파워와 체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 무엇보다 먼저 프로모터와의 관계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