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휠체어를 타고 텍사스 주 휴스턴의 공항 활주로에 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외를 반가이 맞이하였다.

오바마는 다정하게 부시의 어깨 위로 손을 얹으며 인사하였고 부인 미셸 여사는 딸처럼 부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90세에 파킨슨병까지 앓고 있는 노신사는 “대통령이 내 고장에 오시는데 마중 나오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 내외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오바마는 민주당 소속이고 부시는 공화당 전 대통령으로 정치이념과 노선이 서로 달랐다.

각기 소속 정당이 다른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우리나라 퇴임 대통령이 롤모델(역할규범)로 삼아야 할 아름다운 장면이다. 지난날 우리나라 퇴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적대시하고 축출해야 한다며 국민들을 선동했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강연’을 통해 “독재자(이명박)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라…모두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어 그는 “피맺힌 심정으로 말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이 대통령을 몰아내라고 거듭 충동질했다.

퇴임 대통령이라는 데는 부시와 김대중이 같지만 둘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부시는 소속 정당이 다르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인사드리고 싶어” 휠체어를 타고 공항 활주로까지 나가서 반겼는데 반해, 김대중은 현직 대통령을 적으로 간주하며 축출하라고 선동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부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정치에서 손을 떼었고 오직 여생을 봉사하는 숭고한 정신을 지녔다. 그에 반해 김대중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정치에 개입하고 선동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추한 노욕(老慾)의 발작이었다.

부시는 2차대전 당시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58회나 출격했고 무공훈장을 세 개나 탔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는 85세의 나이로 미 육군 낙하전문팀 대원 1명과 함께 3200m 상공에서 뛰어내려 무사히 착지하는 등 스포츠를 즐겼다.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이 가득하다. 그는 작년 7월 옛 부하직원 아들이 백혈병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자 연대감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도 삭발하고 그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나는 부시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 서울을 방문했을 때 1996년 1월 12일 40여 분간 정담을 나눈 일이 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자문위원으로 향군 회장이던 장태완 장군과 둘이서 그를 호텔로 예방하였다. 부시 전 대통령이 12·12 신군부 쿠테타 때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목숨을 걸고 진압에 나섰던 “참군인 표상” 장 장군을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이뤄진 회동이었다. 장 장군이 부시에게 서울에서 하루 더 쉬었다 가시라고 권유하자, 그는 “내 아내 바바라가 그리스에서 기다리는데 하루라도 늦는 날이면 나는 쫓겨난다”고 조크를 던져 크게 웃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의 소탈하고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거인과의 정담 자리는 시종일관 편했으며 활기로 가득 찼다.

우리나라 퇴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을 만하다. 후임 대통령을 적으로 간주하고 “피맺힌 심정으로…모두 들고일어나라”며 편을 가르는 옹졸한 퇴임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시처럼 정치에선 손을 떼고 남자답게 고공 낙하 등 호연지기 스포츠를 즐기며 봉사활동 등에만 전념해야 한다. 퇴임 대통령이 부시를 롤모델로 삼을 때 온 국민들은 지역과 당적을 초월하여 나라의 어른으로 존경할 것이며 국민적 화합은 절로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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