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납치피살 사건과 관련,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감사원 조사를 받기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김 사장은 그 동안 몇 차례 진술을 번복하고 대사관을 4차례나 방문했음에도 김씨의 피랍사실을 알리지 않는 등 숱한 의혹을 낳아왔다. 김 사장은 자신에게 쏠린 의혹의 시선을 풀기 위해 귀국 다음날 모 경호업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그러나 김 사장의 이날 인터뷰에도 불구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달 30일 귀국후 1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의 발언이 번복되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저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일차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다만 의혹들에 대해서는 진실규명 차원에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그래야 국민들의 의혹도 해소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조사에는 성실하게 응할 것”라고 밝혔다.

협상은 잘되고 있었다?

김 사장은 김씨의 피랍사실과 관련 “이라크인 직원 2명을 통해 무장세력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김선일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다는 답변을 듣게 됐다”며 “이후 본사에서 법률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라크인 변호사를 통해 무장 세력 간부와 지속적인 접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석방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그러나 “김씨 피랍사실이 보도된 후 상황이 악화되면서 6월 22일 오후 1시경 변호사로부터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고 파병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후 아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팔루자쪽으로부터 35km 떨어진 곳에서 미군에 의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김 사장의 기자회견에도 불구,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연락두절된 5월 31일 이후 10여일 동안 김선일씨의 행방을 찾는데 주력했고 김씨의 납치 사실을 알게 된 후 변호사를 통해 무장세력과 접촉했다는데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라크 현지에 머무르고 있는 평화운동가 윤정은씨는 모 라디오 방송국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김선일씨가 피랍되고 사체로 발견된 지점이 팔루자인데, 팔루자를 여러번 다닌 사람으로서 김천호 사장의 진술들이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많다”며 “김 사장이 변호사를 대동했다는데, 변호사의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변호사라는 존재가 있었는지 조차도 의혹이다”라고 지적했다. 윤씨는 또 “지금 거기(이라크)는 전쟁터다. 교통사고가 난다고 해도 경찰서에 등록될 리가 거의 없고, 자체적으로 변호사가 중재하고 협상을 이끌어내는 위치의 변호사가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미군은 정말 몰랐을까?

김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관련, 국내에서 보도된 내용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며 “미군 측에 알린 적이 없으며 이와 관련된 최근의 몇몇 보도문제에 대해 변호인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나무역이 미군납업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나무역은 지난 1991년 걸프전때 미군부대에 군납을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두바이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천호 사장의 형인 김모씨도 현재 미군 군납업무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라크에서의 미군군납은 지난해 이라크전 발발후 미군이 바그다드에 진입하면서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김 사장이 지난 10일 피랍사실을 알린 원청업체 AAFES는 미국과 아시아, 유럽지역에 주둔중인 미군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회사다. 경영진과 이사회에는 현역 군 장성과 장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을 정도로 미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사장이 김씨의 피랍사실을 미군 상부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그러나 미국 측은 여전히 알자지라 방송을 본 이후에 김씨의 피랍사실을 알게 됐다고 이같은 사전 인지설을 부인하고 있다.

대사관에 알리는 것이 김씨 신변에 위협?

김 사장은 대사관과 한국 정부측 통보여부에 대해 “대사관을 4차례 방문하였으나 피랍사실에 대해서는 통보한 사실이 없으며 팔루자 지역 모포지원 문제와 영사관 신축 건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번째 방문시에는 김선일씨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였는지 불분명하여 통보할 수 없었다”며 “이후 방문시에는 피랍사실을 안 이후였는데, 당시 무장단체와 접촉한 변호사로부터 알리지 않는 것이 신변 보호에 더 이롭다는 말을 들었고, 곧 풀어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기에 믿고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된 정치적인 문제였음에도 김씨의 피랍 사실을 정부와 대사관에 알리지 않는 것이 더 이롭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무장단체는 알자지라 방송에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고 김선일씨를 살해하기전 최후통첩으로 24시간의 시간을 줬다. 이는 김씨가 무장단체에 20일 이상 억류돼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씨의 납치가 처음부터 한국군 파병철회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란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주장은 돈을 목적으로 한 단체에 납치된 이후 협상이 실패하자 이라크 저항무장세력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또 ‘한국인들을 납치하면 돈이 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는 현지 교민들의 전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몸값 요구 사실 여부에 대해 “무장 단체로부터의 몸값 등 어떠한 형태의 요구조건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 해결하려 한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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