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오전 남해 맹골수도 인근 해역에서 세월호가 2시간20분만에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중 300여 명이 산 채로 수장되었다. 기계적인 참변 원인은 조타수의 급격한 변침(變針:항로변경)으로 배가 중심을 잃고 한 쪽으로 기운 데 있다. 우리 국민의 “안전불감증” “빨리 빨리” “대충 대충” “적당히” 의식도 한 몫 했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참사 연유는 선사(船社)측과 선원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을 지키지 않은데 기인한다.

세월호의 46개 구명정들 중 오직 1개만이 펴져 45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원래 여객선 승무원들은 비상시 구명정 사용 등과 관련된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도록 되어있다. 세월호 측이 ‘원칙‘대로 훈련을 시켰더라면 구명정의 문제점을 미리 발견, 대처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사전 훈련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한 응보였다.

세월호는 컨테이너 등 1157t의 화물과 180대의 차량을 적재했다. 화물과 자동차는 비상시 한쪽으로 미끄러져 쏟아질 것에 대비, 단단히 고정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세월호의 화물들은 철저히 묶지 않았다. 배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자 어설프게 결박된 컨테이너 등 화물이 한쪽으로 와르르 쏟아져 배를 순식간에 전복케 했다. 화물들을 단단히 갑판에 고정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데서 세월호의 참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운항은 입사 4개월의 3급 항해사가 맡고 있었다. 선박직원법 시행령에 따르면 3000t급 이상의 연안 여객선은 1급 또는 2급 항해사가 선장을 맡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렇지만 6825t의 대박(大舶) 세월호는 3급 항해사에게 맡겨졌다. 2급 항해사 이준석 선장은 조타실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물살이 사나운 맹골수도 근처에서 전복된 것은 1-2급 항해사여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 탓이다.

선장은 선원법 11조에 따라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때 인명·화물·선박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선장이 비상시 승객들을 먼저 구조하는 관행은 국제적으로 오랜 전통으로 굳어져왔다. 하지만 이 선장은 배가 기울자 승객들에게 “객실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케 한 뒤 우왕좌왕하다가 제일 먼저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방송 지시대로 객실에서 공포에 떨며 대기하던 착한 승객들은 졸지에 때죽음을 당해야 했다.

1912년 4월14-15일 한밤중 북대서양에서 빙하에 부딪혀 2시간40분만에 침몰한 영국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스미드 선장은 탈출하지 않았다. 그는 침몰하는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승객들을 구명정에 오르도록 지휘했다. 당황하는 승객들에게는 “영국인 답게 처신하라”고 소리치며 2224명중 710명을 구조했다. 그는 배가 마지막 가라앉는 순간 부하 승무원들의 탈출 간청을 뿌리치고 갑판위에서 꼿꼿이 선채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타이타닉 처럼 2시간20분만에 침몰한 세월호에서는 대낮인데도 겨우 174명만 구조되었을 뿐이다. 선장이 인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먼저 뺑소니 친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원칙’을 깔아뭉갬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비단 세월호로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모두 예외일 수 없다. 국회는 법안통과 ‘과반수’ 의결 ‘원칙’을 무시하고 60% 찬성을 법제화함으로써 국회를 “식물 국회”로 침몰시켰다. 기업인들은 편법으로 기업을 자식들에게 상속하려다 쇠고랑을 찬다. 상속법규 ‘원칙’을 따르지 않은 대가이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인*기업인의 ‘원칙‘ 경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들도 슬그머니 법과 원칙을 외면, 실리를 챙긴다. 우리 모두는 세월호 비극을 계기로 선장에게만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은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가 남긴 슬픈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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