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는 큰 일 터질 때마다 문제를 파헤치고 뿌리를 뽑는 개혁보다 모든 걸 덮으려는 데 열중한 ‘세월호’이름 만큼이나 무정한 ‘세월’을 보내왔다. 이번 세월호 침몰참사의 전 과정이 낱낱이 조명되면서 이 나라 정치가 얼마나 많이 썩어 있었고, 한심한 작태에 빠져있었는지가 마치 물 위에 떠오른 낙엽조각처럼 드러나고 있다. 하다 하다가는 선박사고의 수사 주체인 해양경찰이 거꾸로 수사대상이 된 상황이다.

끝내는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취임 14개월째의 대통령을 참사 책임자로 지목하는 글이 올라서 찬반 공방을 일으켰다. 이러한 정서에서 빚는 야권정치의 당리당략적 모순이 또한 기도 안 찬다. 사고 후 내각 총사퇴를 거론하던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막상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자 이번엔 이를 “비겁한 회피”로 공격하고 나섰다.

국회 농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세월호 침몰사고 10일 만에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선박의 입항 및 출항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 시켰다. 선박 안전 운항을 위해 반드시 관제통신을 청취하도록 한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건 지난해 1월이다. 안건 발의 후 1년3개월 동안을 깔고 뭉개다가 사고나자 이 발의안을 포함해서 안전관련 법안 6개를 한꺼번에 부랴부랴 통과시킨 것이다.

국민 생명에 이르기까지 정치공학적 접근을 하는 우리 정치가 통렬한 반성을 하지 않는 한 나라가 바로설 기회가 없어 보인다. 또한 이번 사고 수습 후 정홍원 총리 사퇴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뒤이어 나타날 개각이 단순한 국면전환용이어서는 아니하느니만 못하다. 인사 후유증 때문이다. 인적 교체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시스템 개혁이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 민간 부문까지 함께하는 인식의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대한민국 미래가 캄캄하다. 이런 뜻에서 김한길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여야와 박근혜 정부가 힘을 하나로 모아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한 말이 모처럼 뼈있게 들렸다. 만에 하나라도 야권이 세월호 참사를 눈앞의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공학에 매달리면 세찬 민심 역풍이 휘몰아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검·경 수사과정에 관습적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여전히 빚어지고, 청해진해운과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등에 대해 ‘먼지털이식’ 수사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사례들이 결코 돼먹은 나라꼴이 아니다. 고물 다 돼버린 폐선 수입과 무리한 증축, 화물과적, 부실한 안전점검, 대출 특혜 의혹 등이 수사의 핵심사항이다. 그 다음으로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엉터리 초동대처,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태에 관한 수사가 완벽해야 제대로 된 나라 모양이 된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고 피해자들의 정부 불신이 극에 달하고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미워하는 바탕 위에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될 일이 없다. 그처럼 미워하고 침 뱉으면서도 우리네 삶을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의 설움과 분노가 온 하늘을 덮는 비통한 세월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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