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소신과 원칙’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그의 리더십은 ‘깨알 리더십’, ‘담임선생님 리더십’을 함께 한다는 데서 우려를 자아낸다. 대통령이 초등학고 담임선생님처럼 연필 깎는 일 까지 챙기듯 세세한 일에 참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서는 관료들이 무사안일로 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에 대한 대통령의 독려와 질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독려와 질책이 깨알·담임선생님 식 참견으로 간주된다면, 관련 부처는 능동적 직무 수행 보다는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말씀’이나 받아쓰게 된다. 정부 부처들은 대통령의 독주 아래 활력을 잃고 피동적으로 가라앉는다. 21세기 사회는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으므로 각기 부문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될 때 행정의 경직과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1인 독주 역기능은 세월호 참변 수습과정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침몰 이틀째인 4월 17일 800여 명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하였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공무원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사고 현장 방문은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순발력있는 조치였다. 그의 사고 책임 추궁과 엄벌 약속도 관련기관의 초동단계 대응 미흡과 끓어오르는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 및 분노를 감안할 때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때 관련자들을 물러나게 하며 엄벌할 것이라고 공언한 대목은 1인 독주의 부작용을 빚어낼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관계 기관의 조난 수습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자신의 독단적 권위만 부각시킬 때,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 책임자들을 우습게 여기고 대통령만 바라본다는 데서 그렇다. 우려했던 대로 실종자 가족들은 전문 기관의 수색을 “못 믿겠다”며 “청와대로 가자”고 나섰다. 29일 박 대통령이 경기도 안산시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도 한 유족은 대통령에게 “끝까지 현장에 있으셔야지…지금 대통령님이 (바다에) 내려가서 직접 지휘하시라”고 대들었다. 모든 걸 대통령에게 기대케하는 대통령의 담임선생님 리더십이 초래한 부정적 파장이었다.

자유민주 국가는 각기 전문 기관장들에게 행정권한을 위임해야만이 효율적이며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박 대통령 자신도 취임 초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강조, 권한 위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통령은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큰 틀을 제시하고 지휘 감독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총리와 장관에게 권한을 위임, 그들이 맡은 일을 소신껏 그리고 신명나게 밀고 가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기관장들은 대통령의 정책 방향대로 집행계획을 세우고 필요 인력을 배치하며 팀워크(협동작업)를 짜서 관철시키면 된다.

이처럼 대통령과 장관의 책무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대통령이 장관이나 과장이 할 일 까지 참견한다면 관련 부처는 손 놓고 대통령만 쳐다보게 된다. 정책이 잘못되면 그 책임 또한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담임선생님’ 리더십이 자초한 부정적 파장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 정부의 기본인 행정 권한 위임에 인색해선 아니 된다. 취임 초 생각대로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로 나가 국민이 장관을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는 다르다. ‘담임선생님’ 리더십으로는 민주화·국제화된 나라를 끌고 가기 어렵다. 본인만 바쁘고 피곤할 따름이다. 박 대통령은 소신과 원칙은 지켜가되 ‘깨알’, ‘담임 선생님’ 리더십에서는 미련 없이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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