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나보다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어린 자식을 낯설기만 한 외국땅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은 아닌지. 조기유학, 하지만 과연 아픈만큼의 결실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상하이의 전통적인 부촌이며 번화가인 쿠베이(古北). 주로 한국이나 일본 등의 외국계 대기업의 상사원이나 주재원 혹은 현지 공관원 가족들이 많이 거류하는 곳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그래도 문제가 없죠.”마침 쿠베이에 있는 대형마트 까르푸에 쇼핑나온 한 한국주부를 만나 조기유학에 대해 물어보았다.

중국열풍에 힘입어 중국으로의 조기유학이 급물살을 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상하이 체류 4년째인 김모(40대·상사원 부인)씨는 중등학교에 다니는 두자녀를 두고 있다. 자녀들은 현재 국제학교(후술 참조)에 다니며 한국 명문대학으로의 특례입학을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김씨에 의하면 그녀의 자녀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일단 부모와 함께 있으며 적지 않은 학비 역시 회사에서 부담해주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씨와 같은 조기유학은 더할나위 없이 잘 된 케이스이다.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조기유학은 부모와 떨어져 어린 학생만 따로 나와 있거나 혹은 중국의 경우, 학비가 저렴할 것이라고 여기며 무작정 떠나보낸 그러한 ‘준비가 안된’유형이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의 조기유학은 대강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이뤄진다.

중국의 초·중·고등학교에는 한국인(외국인)이 입학가능한 학교가 따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국제학교’라고 불리는 미국,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 정부 등에 의해 승인, 그들에 의해 운영·관리되는 학교로 연간 수업료는 약 1만5,000~2만달러(약 1,800~2,400원)정도이다. 다음으로는 중국학교내에 1개반 등을 ‘국제부’로 지정, 별도의 교과과정으로 운영하는 학교로 연간 수업료는 약 5,000~1만 달러(약 600만~1,200만원 정도)이다. 마지막으로는 외국학생 수용이 허가된 ‘비준학교’로 이곳에서의 수업은 중국학생과 모든 것이 똑같다. 연간 수업료는 약 5,000달러 내외(약 600만원 정도). 참고로 일반적인 중국의 중·고등학교 연간 수업료는 우리 돈으로 10만원 내외이다.

“한국식당을 하다보니 꽤 많은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요,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상하이의 한 대학 근처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 김(30대)씨는 세상은 너무 ‘역설적인’것 같다며 속상해 한다. 그에 의하면 없는 살림에 허리띠 졸라매며 보낸 유학이건만 현지의 아이는 아이대로, 떠나보낸 한국의 부모는 부모대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가정이 힘들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부모중 어느 한 쪽이 함께 올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자식만큼은 고된 삶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어렵사리 보낸 유학길인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혀 삶이 더욱 고달프게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하였다 한다.

“정말이지 세상은 가지지 못한 자는 유학도 보내기 힘든 너무도 냉혹한 곳이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상인 김씨의 진솔한 말이다.물론 그렇다고 경제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일반서민들은 유학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또한 이미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부모들이 김씨의 말을 듣고 유학을 포기할리도 만무할 터이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글을 마치면 그렇지 않아도 수없이 들어 온 조기유학의 폐해에 대한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이니 결국 기자는 ‘어차피 보낼 사람’들을 위해 조금은 더 나은 조기유학 보내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기로 하였다. 가장 이상적인 조기유학은 부모가 함께하는 것. 하지만 현실여건상 힘들 경우에는 부모역할을 대행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차선이다.

이러한 생각에 부모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보았다. 그 결과 1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는 오랜 친구의 중학교 1학년 아들녀석을 맡았었던 이모(41세·상업)씨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고, 말마십시오. 그 친구와는 그 이후 연락을 끊고 지냅니다.”외국생활 경험삼아 아들녀석을 보낼테니 한번 맡아달라길래 별 생각없이 집에 데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1살 차이나는 이씨 아들과도 사이가 안좋았고 무엇보다도 중국학교에 적응을 제대로 못해서인지 학교를 가지 않으려하거나 혹은 학교 측에서도 간혹 전화가 걸려와 적잖이 애먹었다 한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과 유사한 여러가지 다른 사연도 들려주었다.

유학 알선업체를 통해 한 대학의 어학연수 코스에 참가한 고등학생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대학생이나 일반 성인 ‘급우’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어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돌연히 가출, 그 녀석을 맡고 있던 친척집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는 일, 유학생활에 적응은 제대로 안되고 한국의 집에서는 “잔말말고 열심히 하라!”는 윽박질에 결국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술마시며 어울려 돌아다니다 중국학생들과 싸워 중국 공안에 끌려갔었다는 아이들 등등. 결국 잘 되고자 보낸 조기유학인데 돌아온 것이라고는 부모 자식간의 균열이나 자녀를 맡았던 친지나 부모 친구들간의 관계 소원 등, 생각지도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맡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는 이씨가 줄담배를 피워대며 하는 말이다.

너도나도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시대에 중국으로의 조기유학은 상대적으로 값도 저렴하다는 ‘착각(!)’과 중국이라는 장래의 기대감 등으로 인해 증가추세에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늦을세라 하고 보내는 조기유학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학생당사자는 물론 부모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부자지간의 혈육의 정 외에 친지, 친우간의 정에도 심각한 균열이 초래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취재 중에 알게 된 조기유학을 준비중인 부모들이 절대 간과해선 안될 한가지. 위 모든 문제는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내 자식이”라는 부모의 안일한 생각에서 이미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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