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이 있다. 샤워하는 사람이 처음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찬물에 깜짝 놀라 반대방향으로 확 돌린다. 그러나 이번엔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다시 우측으로 확 돌리는 등 좌우로 확확 돌려대는 짓을 조롱하는 뜻이다.

우리 정부도 세월호 참변 충격 속에 수습책을 세우면서 ‘샤워실의 바보’처럼 한쪽으로 확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초점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에 있었다. 그는 몹쓸 규제를 ‘암덩어리’, ‘쳐부술 원수’로 규정, 규제개혁을 위해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임하자며 결의를 다졌다.

지난 3월 박 대통령의 ‘사생결단’ 의지 표출로 정부는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규제혁파 작업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 시대적 중대 과제는 세월호 사건으로 묻혀버렸다. 정부의 중심축이 규제개혁에서 세월호 참사 수습으로 확 틀어진 탓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울부짖음과 충동적인 언론 보도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에 규제개혁의 동력이 세월호처럼 침몰해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당연히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수습에 적극 나서야 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기 위해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생결단’ 의지로 추진하던 규제개혁을 세월호 참변에 밀려 중단하거나 경시해서는 아니 된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왔다갔다하는 ‘샤워실의 바보’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세월호 비극은 해운안전을 위해 정부가 처리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떠올렸다. 선장과 승무원들에 대한 철저한 안전교육,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총리실간 의 재난사고 수습 컨트롤타워(통제) 일원화, 신속한 초동 대응, 관피아 근절, 등이 그것들이다.

저와 같은 해운안전 관리상의 문제들을 광정(匡正)하기 위해서는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 제정은 박 대통령이 '암덩어리'로 규정, 과감히 도려내고자 하는 규제들이 다시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새로운 규제들의 일부는 자칫 일자리 창출과 해운업 성장을 저해하는 새로운 ‘손톱밑 가시’가 될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제2 세월호 참사 예방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기관과 규제 신설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미국도 2001년 9·11테러를 당하기 전에는 재난 현장의 경찰과 소방국의 지휘체계가 따로 따로 2원화 되어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휘체계의 2원화로 인해 세월호 희생자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소방관들이 참변을 당해야 했다.

알카에다의 여객기 납치 테러로 뉴욕 ‘월드 트레이드 타워’ 둘 중 북쪽 타워의 붕괴가 임박해졌다. 그때 경찰 헬기는 즉각 대피령을 내렸고 건물 내로 진입했던 경찰관들은 모두 빠져나왔다. 하지만 소방관들에게는 지휘체계가 달라 대피령이 전달되지 않아 그들은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경찰 희생자는 23명이었는데 반해 소방관은 343명에 달했다. 이 참변을 계기로 미국은 2002년 22개 안전관련 기관들을 통폐합해 국토안보부를 신설했다.

세월호 참변으로 정부의 중심이 규제개혁에서 세월호 쪽으로 쏠린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가 세월호 수습에 정신을 잃은 나머지 규제개혁 과제를 등한히 한다면 ‘샤워실의 바보’ 같이 한 쪽으로 쏠리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밖에도 해운안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새로운 규제를 남발한다면, ‘손톱밑 가시’를 다시 양산하게 된다. 이 또한 ‘샤워실의 바보’짓이다. 정부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성난 군중심리와 선동적인 언론에 가볍게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가야 한다.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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