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이후 불과 12년이 지난 지금, 중국대륙을 기웃거리는 한국인은 연간 180만명 (2003년 156만명) 선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중국에 눌러 앉거나, 장기체류하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 재중 장기거주 한국인은 이미 30만명(2003년 29만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2010년에는 재중 한국인 수가 1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거 원, 큰 맘 먹고 대학원에 등록했는데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는군요.”중국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한국인 서(남·30대 후반)씨는 표정관리가 서투르다. 지난 해에는 벼르고 별러온 대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여유가 없어” 수업참가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고학력 학위취득이라는 목표때문에 고민이라는 그는, 온몸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질 못한다. 알고보니 잘 나가는 중국경제의 떡고물 챙기느라 학교문턱 드나들 여유가 없었다니 그럴만 하다.

상하이 거주 한인들 사회의 한 친목모임에서 만난 개인 사업가 길모(40대·남)씨는 떨떠름한 표정 속에 2004년을 회고한다.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듯한 그가 자리를 옮겨간 뒤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한국인 김모(40대·남)씨가 저간의 사연에 대해 귀띔해준다. “그럴 만해요. 저 사람, 작년에 부동산에 손 좀 댔다가 피박썼어요. 적잖은 돈을 사기당했거든요.” 부동산 피박을 귀띔해준 그 남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귀동냥과 저울질 속에 2005년 1월 (중국생활 6개월째)을 보내고 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이와 같이 차이나 드림(China Dream)을 찾아 떠나 온 중국땅에서는, 늘어나는 한국인 만큼이나, 또 그들이 품은 저마다의 드림만큼이나 다양한 고민과 사연들이 또 다른 1월을 그려내고 있다.

중국에는 물론, 이들 사업가나 자영업자들 못지않게 신년을 남다른 고민속에 맞는 또 다른 부류의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한국기업의 중국 주재원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1월은 귀임과 부임의 계절. 그런데 이를 둘러싼 그들의 고민 또한 가볍지가 않다. 먼저 이들 대부분은 제도권 교육을 받는 자녀들을 둔 연령층이다. 따라서 이들의 귀임에는 무엇보다 자녀교육 문제가 따르게 된다. 중국에서 회사의 지원으로 국제학교나 한국학교에 다니며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던 자녀들. 이들을 이대로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데리고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 주재원들의 ‘마나님’ 들은 또 다른 고민으로 잠을 설친다.

사실 일반적인 경우, 주재원 부인들의 중국생활은 가히 현대판 귀족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회사보조로 한국보다는 훨씬 나은 집에서, 그것도 가정부나 기사를 두며 생활하는 사모님들. 남편과 아이들 학교보낸 뒤 쇼핑이나 사교모임, 문화강좌나 골프 등으로 분주하던 이 삶이 한국에서의 평범한 샐러리맨 아내 생활과 어찌 비교되겠는가. “설마설마 했지만, 남편이 이렇게 갑자기 귀국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머쓱한 듯 웃음지어 보이는 한 한국인 주부는 아쉬움에 어쩔 줄 모른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결국 자녀교육을 위해 남편만 귀국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한편 남편은 남편대로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은 있으나 한국에서의 직장생활과는 비교가 안되는 대우를 향유하는 중국에서의 나날들. 그런데 이제 귀국하면, 어떤 환경의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업무로 새로이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더욱이 요즘 직장생활이란 게 언제 어떻게 될지 지극히 불투명하지 않은가. “과거의 경우 매년 1월이면 귀임하는 부모따라 귀국하는 학생들이 많아 학원경영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마(魔)의 1월’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엄마와 함께 남거나 혹은 아버지의 독립으로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까요.”한 한국학원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에서 유추가능하듯, 중국에서 맞이하는 한국인들의 1월은 기러기 가족 태동기와 직장에서 독립선언하는 모험기의 서곡이기도 한 것이다. 재중 한국 유학생들 또한 남모를 번민속에 1월을 맞이한다. 작년 연말, 재상하이 한국영사관에서는 재중국 한국기업들과 한국 유학생들간의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한국유학생의 고용촉진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유학생들의 모습은 밝지가 않았다. 그들에 대한 (한국기업의) 암묵적인 기피가 재차 확인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행사 후 유학생 몇몇이 주축이 되어 재중 한국인 유학생 100명을 상대로 ‘유학생 본인의 경쟁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자신들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선 재중유학생들의 12%만이 자신의 중국어 수준에 만족하고 있으며 88%는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그러면 중국어 이외에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31%만이 영어나 일어 등의 외국어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 나머지 69%는 다른 준비는 전혀 않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다른 외국어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중 60%는 또 다른 국가로의 유학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한국 유학생 고용을 기피한다는 것은 말도 안돼요. 아니 그럼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나도 유학생 중 한명이지만, 사실 내가 한국기업 사장이라도 고용을 주저할 것 같아요. 유학생들의 경쟁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거든요…”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그런데 설을 맞아 귀국해야 할 한국 유학생들은 이와 같이 축 늘어진 어깨와 한숨속에 귀국을 망설이며 혹독한 1월을 맞이하고 있는 게다. 오늘도 중국의 각 국제공항에는 설렘속에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한국인들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재중 한국인들, 즉 이제 막 발을 내디디려는 이들의 중국생활 선배들은, 현실속의 온갖 번뇌와 더불어 버겁기만 한 1월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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