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술자리 모습. 한국과 달리 그들은 서서 건배를 제안하는 등 자주 일어선다.대세의 흐름에 도도히 역행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 남들은 어떻게든지 더 키워보려 안간 힘을 쓰지만 이곳만은 오히려 꽉꽉 누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아무리 누르려 해도 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또 다시 기록되고만 그 수치가 9.5%, 다름 아닌 2004년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다. 팽창일로의 중국경제를 잘 활용하면 한국경제 살리기에 유용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무리없이 다가가 목적을 달성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아닐까? “중국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있지만, ‘문화대국’임을 간과해선 안돼요. 그들의 전통문화와 관습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거든요.”일본의 한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는 일본인 에모토(남·60대) 교수의 말이다. 그런데 그의 중국평에 대해 기자도 공감한다.

사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중국을 낙후되고 지저분하며 시끄러운 불난 호떡집 왕서방의 후예쯤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편견이다. 사물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고, 번잡스런 중국의 이면에는 찬란한 전통과 관습이 수천년에 걸쳐 면면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은 나에게 중국의 전통과 문화, 관습에 대해 꼼꼼히 질의하고 있어요. 그들은 중국인, 혹은 중국인 파트너사와의 부드러운 관계맺기와 원만한 유지에 이들을 잘 활용하고 있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기자에게는 중국의 음주매너와 흡연매너가 떠올랐다. 다른 여러가지 중요한 것도 많지만 이 두가지가 바로 중국인과의 관계구축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활용하면 유용할 중국의 음주매너(담배매너는 박스기사 참조)는 무엇일까.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격에 대한 논의를 술에 대한 논의에 빗대어 왔다.

이를 테면 술의 품격을 논함에 있어 사용되는 ‘짙은 향, 온화함, 달콤함과 그 뒤의 여운(濃香, 醇和, 美甘, 回味長)’ 등의 기준을, 사람의 됨됨이를 언급할 때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술이 없으면 예를 다할 수 없다(無酒不成禮)” 는 말이 아직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술과 지근거리에 있는 중국인의 일상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넓은 땅덩어리 만큼 중국 각 지역은 오래전부터 고유하고 독특한 음주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전체 중국사회의 보편적인 주도(酒道)가 존재하기도 한다. 우선 우리가 술자리에 초청받았거나 혹은 술자리를 마련할 때는 자리배치에 신경써야 한다. 신분에 따라 앉을 자리가 관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룸 하나를 술자리로 준비할 경우, 주최측의 최고위자는 룸의 출입구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착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오른 쪽으로는 초대받은 최고위자가, 그 왼 쪽으로는 초대받은 두번째 고위자가 착석하도록 되어있다. 이후 주최측의 2인자는 문을 등지고, 즉 주최측 1인자와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으며 그 좌우로 그 다음 고위자가 마찬가지 순으로 번갈아 앉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으로 ‘멘쯔(面子, 체면)’를 소중히 여긴다. 즉 이러한 소소한(?) 부분에서도 그들은 체면손상을 느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술을 권할 때나 건배를 요청받았을 때의 매너. 이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상대방에 맞춰 잔에 입을 대고 떼는 것이 일반적 예의이다.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또 상대방보다 너무 빨리 마시거나 안 마시는 것 역시 상대방의 멘쯔를 깎아내리는 무례함으로 비쳐질 수 있다. 술에 입을 축이고 싶거나 한잔 들이켜고 싶을 때도 혼자 해선 안된다. 이때는 잔을 들어 자연스럽게 건배를 요청하는 형식을 빌려 마시는 것이 좋다.

이쪽만이 혼자 마시는 것 역시 상대방이 마음에 안든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어서서 건배를 건의하거나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특정 개인에게만 한 잔 할 것을 요청하는 “찡 잇뻬이(敬一杯)” 등을 자주 외친다. 전자의 경우는 모두 함께 일어나 주위 사람들과 가볍게 잔을 부딪히며 마시면 되지만(한국과 같은 방법), 후자의 경우는 요청받은 한 개인만이 응하면 된다. 다시 말해 요청받은 해당자만 자연스럽게 일어나 요청한 사람과 잔을 부딪히며 들이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참석자가 모두 함께 건배하는 우리식과 달라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특정 양자간의 건배(마치 여기저기서 일대일 미사일을 주고받는 듯한 재미있는 모습이다)를, 상대방의 각 개인들에 대한 개인적 덕담을 전하는데 잘 활용하면 전체와의 관계뿐 아니라 이들 개인과의 관계형성에도 톡톡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인과의 연회석상에서는 가능하다면 “랑 워 찡 잇뻬이(讓我敬一杯, 당신께 경의를 표하며 한 잔하고 싶습니다)”를 적절히 잘 활용하길 권한다. 이때 잔을 부딪칠 때는 상대방의 지위와 관계없이 상대에 대한 예의와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상대방 잔보다 약간 낮은 곳에 부딪치는 것이 좋으며 반드시 다 마실 필요없이 자신의 주량껏 마시면 된다. 중국인들과 술을 마시면 건배, 즉 무조건 ‘원 샷’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이러한 사정은 특히 지역마다 달라 북경 등의 북방지역은 원 샷도 자주 목격되지만 상하이 중심의 남방지역에서는 자기 주량껏 하면 무방하다. 또한 한국과 달리 잔을 돌리는 것은 그다지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한손으로 술을 따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국의 원래 주도는 우리와 같이 양손으로 공손히 따르는 것이므로 가능하면 양손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첨잔은 언제든지 가능하며 그 외는 우리나라의 주도를 따라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중국의 음주매너와 관련한 마지막 한가지. 술과 함께 일상을 꾸미는 중국인들이지만 그렇다고 술에 취해 헤매거나 추태를 피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술의 양면을 잘 알고 스스로를 엄히 다스리고 있는 것인데 술에 취해 경거망동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사회에서 사실상 매장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는 이것이 결코 중국에 대한 사대적 사고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왕이면 상대가 선호하고 상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취하자는 것일 뿐이니까요.” 중국의 한 대학에 방문학자로 온 한국인 한문학자 이성혜(여· 40대 초반) 박사의 말이다.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중국인은 우리와 남의 구분개념이 상당히 강해요. 따라서 일단 그들의 우리,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츠찌런(自己人)’이 되면, 네 친구는 곧 내 친구가 되는 것이죠. 아직도 인맥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중국사회에서 조금만 더 신경쓰고 배려하면 훨씬 더 부드러운 관계가 되는데 이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요.”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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