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7일 오후 12시께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모텔 객실에서 남녀 4명이 숨진 채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 모텔 종업원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이 별다른 외상이 없는데다가 방안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삶을 비관하여 동반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젊디젊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군제대 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인터넷에 빠져 지내던 A(30·남)씨, 대학진학에 실패한 후 많은 심적 갈등을 겪어온 B(20·여)씨, 친구들의 왕따로 학교를 자퇴한 C(18·여)양 등 4명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각자 처한 삶에 심각한 회의를 느껴오던 차였다. 각기 다른 개인사정으로 삶을 비관해오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삶의 낙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하루하루는 무의미했다. 삶은 빛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이들이 바깥 출입을 하는 빈도는 갈수록 줄어들었으며 외부사람들과 접촉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심지어 가족들과의 대화도 사라졌다. 이들의 주요일과는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인터넷을 하며 혼자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2월 어느 날 오후 A씨 등 4명은 여느 때처럼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온라인상에서 만난 이들은 각기 자신의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한가지 커다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들 4명 모두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이들이 처음부터 자살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힘든 상황에 처해있던 탓에 이들의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잘 통했으며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차도 있었지만 삶에 회의를 느낀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은 더없이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한 이들은 처음에는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며 위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들은 이내 다시 막막한 현실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들에게 삶은 힘들고 고달프기만 했으며 삶의 무게는 너무도 무겁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대화를 주고 받던 중 위험한 생각을 품게된다.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동반 음독 자살.서울과 충남, 여주 등 각기 다른 지방에 거주하던 이들 4명은 각기 18세에서 30세로 연고지와 연령에 있어서 무엇하나 공통점이 없었지만 ‘같이 세상을 뜨자’는 목적에 뜻을 모으게 된다. 급기야 이들은 의논끝에 16일 오후 7시경 서울 송파의 모텔에 투숙하게 된다.

자살경력, 왕따, 대입실패 등 제각기 사연 있어

사건을 담당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들이 외상이 없는 점, 방안에서 여러통의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이들이 동반자살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들이 만난 경위에 대해 형사2반 박상오 형사는 “이들 4명이 모두 연령에서 차이가 나고 연고지가 다른 것으로 미루어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관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며 ‘짐작컨대 인터넷에서 만나 자살을 공모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4명은 제각기 다른 문제로 심각하게 삶을 비관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특히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A씨의 과거 경력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과거 군복무 시절 정신병적 문제로 4개월만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는 것. 또 군 제대후에도 A씨의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형사는 “A씨에게 어떤 특별한 정신병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유족측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이는 등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그는 이어 “A씨의 가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바깥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며 ‘조사결과 A씨는 이미 6년전에도 수면제를 복용하여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2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군제대 후에도 A씨의 생활이 그다지 순탄치 못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담당 형사의 말에 따르면 A씨는 혼자 컴퓨터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타인과 접촉을 꺼리는 등 심각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여왔다.또다른 사망자인 C(18)양은 이들 4명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C양 역시 개인적인 문제로 심한 고민과 방황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교우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C양은 결국 고등학교 3학년때 중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 중퇴 후 C양 역시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며 컴퓨터에 몰두해 왔다. 경찰측은 한창 예민한 시기에 있던 C양이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인한 소외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동참한 것으로 추정하고 계속 수사중이다. 박 형사에 따르면 숨진 A씨의 메일을 확인한 결과 이들끼리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메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A씨의 컴퓨터에서는 그가 생전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 흔적도 발견됐다.박 형사는 “현재 컴퓨터 이메일 및 IP등을 조사중이라 어느 누구와 메일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서 확실히 밝힐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A씨의 메일에 자살을 계획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메일로 자살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했던 것은 확실해보인다”고 말했다.

메일의 내용은 모이기로 한 날짜와 장소, 자살방법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서로의 결심 확인에 대한 문장도 적혀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수요일 X시에 XX에서 꼭 만나자’, ‘오늘은 확실히 가자’, ‘오늘은 끝장을 보는거다’, ‘ XXX를 먹으면 죽는 게 확실하냐’, ‘마음에 준비는 됐냐’는 내용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이들의 자살은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경찰측의 전언이다. 현장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은 탓에 캡슐형태로 된 독극물로 인한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 경찰은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해놓은 상태며 이들의 컴퓨터 IP와 휴대폰 통화내역 파악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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