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은데, 모두 괜찮아 지고 있다고 해”

잔해더미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났어. 우리는 잠도 안자고 계속 소리를 질렀어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30명으로 줄었어. 그날은 구조대가 올 줄 알았어. 그런데 저녁이 되도 오지 않았어

[일요서울|이창환 기자] 두산 아트센터에서 진행한 두산인문극장 2014: 불신시대의 세 번째 연극 <배수의 고도>75일까지 공연된다. 두산인문극장은 매년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공연, 전시, 강연, 상영 등을 진행했다. 올해는 불신시대(324~75).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불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세월호 비극이 발생했고 국가기관의 불통과 무능이 드러났다. 최근 의리열풍 또한 사회 전반적 불신을 견디는 일종의 의식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나카츠루 아키히토의 작품 배수의 고도가 보여주고 있는 불신은 현재 우리와 매우 밀접한 종류다. 이전 공연 베키쇼가 표면적으로 사람 간의 불신을, ‘엔론이 거대기업과 돈이 야기하는 불신을 다룬 반면, 배수의 고도는 국가와 고위 정치인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언론을 향한 일본인들의 불신이 수년 간 지속되면서 이를 반영한 장편 연극까지 탄생하게 된 것. 배수의 고도는 대지진·원자력 발전소 참사에 대한 메시지뿐 아니라 극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 덕분에 요미우리 연극대상을 비롯한 센다 코레야 상, 키노쿠니야 상 등을 수상했다.

 

배수의 고도에는 대립이 다양하게 얽혀있다. 정부와 피해자간의 대립, 피해자와 또 다른 피해자의 대립, 봉사자 혹은 방관자와의 갈등 등이 매듭처럼 이어진다. 극 속 등장인물들은 사고 이후의 후폭풍을 개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표출하며, 예기치 못한 행동을 저지른다. 경제 불황과 밥줄이 걸린 현실 앞에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동정 받던 사고 피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배상금, 피폭으로 인한 암 발생 사실 인정 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싸움을 한다. 싸움은 결국 잊혀지지 않기 위한 싸움이다.

사실적이고 깊은 대화가 이어지기에 150(인터미션 포함)의 공연시간도 크게 지루하지 않다. 초반 30~40분은 상승을 위해 미지근하게 진행되는 편이며, 1막과 2막 시작에 들리는 나레이션은 몰입도를 효과적으로 높여준다. 극 후반부의 스릴과 반전 역시 돋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중반부 독백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인물 노자키 사이조눈에 비친 대지진의 날에 대한 독백은 대사·연출·음악이 모두 훌륭했던 장면으로, ‘현실이라 믿기 힘든 현실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우리 연극계 또한 배수의 고도와 같이, 민감한 현실을 반영 하면서도 연극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 나와 주길 하는 바람이 생긴다.

작가 나카츠루 아키히토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세월호 비극을 언급했다. 그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고에는 사람 목숨보다 국가의 위신을 먼저 생각하는 정부의 대응, 화물 적재량을 초과한 배경인 경제지상주의 등 몇 가지 검증해야할 항목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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