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임신으로 결혼,
‘다른 남자 아이’라면 혼인취소 사유

혼인을 하기 전에 임신을 하는 사례는 이제 낯설지 않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시청률이 ‘불륜드라마’를 양산한다. 불륜을 다룬 드라마 ‘사랑과 전쟁’은 지금까지도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불륜, 점잖지 않은 주제지만 불구경하는 것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이제는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의아할 정도다.

청춘남녀가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와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이른바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결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2년전 부산가정법원 가사5단독 백주연 판사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이유로 결혼하였으나, 다른 남자의 아이임이 밝혀진 경우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자녀를 포태하였다고 하므로 아내와의 혼인에 이르게 된 것인데, 실제로 아내는 다른 남자의 자녀를 포태하고 있었는바, 남편과 아내의 혼인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사실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남편은 이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이러한 사정은 민법 제816조 제2호에서 정한 혼인취소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다른 남자의 아이 낳은 아내는 남편에게 위자료로 1,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혼인신고가 이루어진 경위 및 남편이 아내의 출산준비를 돕고 그 가족들이 아내의 출산일에 아내를 찾아오기도 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아내 일방이 혼인신고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위 신고 당시 남편의 혼인의사가 부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이에 관한 남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남편이 주위적으로 청구한 ’혼인무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 제816조’는 ‘혼인취소 사유’로 3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즉, ①혼인이 제807조 내지 제809조(만 18세 미만의 혼인, 미성년자 등이 부모 등 동의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혼인한 경우, 일정 범위내의 근친혼) 또는 제810조(배우자 있는 자가 다시 혼인한 경우-중혼)의 규정에 위반한 때, ②혼인당시 당사자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 ③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한편, ‘민법 제815조’는 ①당사자간에 혼의의 합의가 없는 때와 ②8촌 이내의 혈족을 비롯하여 일정한 범위 내의 근친혼을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혼을 원하는 당사자 대부분은 이혼 기록이 남지 않게 하기 위하여 ‘혼인무효’나 ‘혼인취소’를 선호하고 있으나, 민법이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혼인무효나 혼인취소가 가능하다. 또 혼인무효나 혼인취소가 된다고 하여 가족관계등록부에 그 기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만큼 신중하고도 순수해야 한다.

한편 가족관계등록 실무상 배우자 일방이 서류를 위조하는 등 범죄행위로 인하여 혼인신고가 된 경우 형사처벌이 확정되는 등 요건을 충족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족관계등록부에 혼인 기록 자체가 없어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혼인 기록을 없앨 수 없다.


혼인신고 전 파경에 이른 경우,
결혼식 비용 청구할 수 있다

김씨와 이씨는 중매로 만나 결혼식을 치른 후 신혼여행을 마치고 전셋집을 얻어 사실상 부부로서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 이씨와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내 김씨가 가지고온 가정용품 등 혼수물이 적다하여 더 가져올 것을 요구하고 결혼식을 치르고 2주 후 김씨의 친정으로 가서 혼수물이 과소하다는 점을 들고 며느리로 맞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김씨를 친정에 둔 채 돌아갔다.

김씨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신혼집에 다시 돌아오게 되자 혼수문제를 둘러싸고 부부간에 불화가 심해지고 말다툼이 잦아 이씨는 김씨를 구타하는 일이 빈번했다. 한 달 후에는 언쟁 끝에 이씨가 김씨의 전신을 구타하여 2주일간의 입원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가하고 김씨는 일련의 구타행위로 인하여 공포신경증세까지 보였다. 김시는 퇴원 후에도 이씨가 여전히 냉대하고 혼인신고도 거절하여 김씨는 할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서 별거하였다.

이와 같은 사안에서 대법원은 “혼례식 내지 결혼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할 것을 전제로 남녀의 결합이 결혼으로서 사회적으로 공인되기 위한 관습적인 의식으로서 말하자면 부부공동체로서의 사회적인 인증을 목적하는 것이므로 당사자가 예식 후 부부공동체로서 실태를 갖추어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단시일내에 사실혼에 이르지 못하고 그 관계가 해소되고 따라서 그 결혼식이 무의미하게 되어 그에 소요된 비용도 무용의 지출이라고 보아지는 경우에는 그 비용을 지출한 당사자는 사실혼관계 파탄의 유책당사자에게 그 배상을 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흔히 이혼할 때 위자료만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인 위자료 이외에 재산적 피해가 있는 경우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혼주의 재력에 따라서는 결혼식 비용이 수억 원에 이르기도 하는데, 단기간 혼인 또는 사실혼해소인 경우 실무상 위자료 액수가 1~2천만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재산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사소송법은 이혼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가사소송사건을 분류하여 가정법원의 전속관할로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은 정식적 피해에 대한 배상인 위자료 이외에 재산적 피해에 대한 배상도 포함된다.

<염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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