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난리가 일어나거나, 괴질이 돌아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회 불만이나 불온세력이 발호해왔다. 온갖 유언비어와 혹세무민 하는 괴담이 가뜩이나 어렵고 힘들어 하는 난민들을 반이성적으로 내몰아 온 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틈에 세상을 한번 뒤집어보자는 수작이다.


아무런 통신수단이 없던 그 옛날에도 유언비어의 천리질주가 날개 단 듯이 했는데 SNS 도배가 실시간 가능해진 초과학적 환경에선 여러 사람 입이 필요 없다. 그럴 듯하게 자극적이기만 하면 한두 명이 한두 시간 안에 세상 사람들 마음을 온전히 흔들어 놓을 수가 있다. ‘세월호’ 사태같이 온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황에선 더욱 날카로운 효과가 일어난다.


북한 무인기침투를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코미디 같다고 했던 민주당 정청래 현역국회의원과 MBC방송 해직기자 출신인 이상호 씨가 퍼뜨린 ‘세월호 마스크맨’ 괴담은 이 사람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고 언론에 종사했던 인물인가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세월호 승선원 구조 동영상에 등장한 마스크 쓴 남자가 고도로 훈련받은 폭파요원이며, 그가 세월호를 폭파 시켰다는 내용을 세월호 생존자들이 증언한 ‘꽝 소리’와 연관시켜 퍼뜨린 내용이 기함하고 자빠질 노릇이었다.

확인된 동영상 속 마스크 쓴 인물은 세월호 기관실 조기수 김 모 씨로 구속돼 재판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첫 세월호 재판에 나와서 ‘눈썹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다’던 얼굴 전면을 드러냈다. 전직 기자와 국회의원이 황당무계한 괴담의 제조 및 확산자가 되는 판이니 다른 철없는 누리꾼들 황당스런 주장 따윈 탓할 계제마저 못 되고 있다.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쏟아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끝나버리는 이 반국가, 반국민적 작폐를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형편이다. 민주사회가 마련한 ‘표현의 자유’가 이런 사람들을 보장키 위한 게 아니다. 자숙할 기미도 없는 후안무치함을 계속 내버려 둬서는 나라 기강이 말이 아니다. ‘괴담’에 마취당한 민심이 무슨 짓을 키울지 모른다.

대통령이 안산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안산시에 사는 한 할머니를 만나 위로한 것을 놓고도 ‘연출’ 논란을 일으키고, 그 할머니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라는 억측으로 번져 나갔다. 심지어 ‘정부가 시신을 숨기고 있다’는 괴담이 퍼지기도 했다. 국민 참사의 상중(喪中) 예의도 모른 채 천박한 언행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정략적 의도로 사실을 왜곡하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법치’ 왜곡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실명제의 위헌 폐기는 유감천만이다. 괴담으로 인한 민심 마취를 막기 위해 반드시 인터넷실명제에 준하는 신규입법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무관한 외부 세력이 실종자 가족의 청와대 항의 방문 시도를 부추기는데도 SNS 괴담이 등장했고, 참사 초반에 언론이 ‘전원구조’ 보도를 내보낼 때도 SNS 괴담 때문이었다.

피해 유족들의 언론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바람에 언론이 장악 당하고 통제되고 있다는 말이 온라인에 공공연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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