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현실 진단하는 연극적 시국선언

여신동 디자이너가 이끄는 최고의 무대미술

[일요서울|이창환 기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연극적 흥분으로 고발하고 풍자하는 <뺑뺑뺑>이 오는 76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뺑뺑뺑에 출연하는 12명의 배우들은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맨얼굴을 드러내고 한국 현대사를 노골적으로 공유한다. 대한민국 코미디, 잔혹사를 픽션과 섞는다는 것에서 일반 연극과는 다른 성격의 몰입이 있다. 배우들과 관객들이 마주하면서 주고받는 웃음과 외침과 부끄러움은 결국 어떤 씁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많은 에피소드를 교차해 배열한 방식은 2시간 이상 쏟아지는 대사를 지루해하거나 버거워하지 않는 장점으로 작용 됐다. 역사 순서를 헤집어 놓으면서도 뺑뺑뺑 돈다라는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달한 점에서는, 연극적 특성이 재미있게 활용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뺑뺑뺑은 영수영희의 반복되는 만남을 그리고 있다. 영수와 영희는 현재, 과거, 미래의 인천공항, 서울역, 부산항, 월남파병선, 노래방, 윤락가, 고공농성장, 강남 과외방, 휴전선, 구한말 왕궁, 뉴타운 철거촌, 탑골공원 화장실, 남한산성, 한국전쟁 직후 환도열차, 단군신화의 동굴에서 오늘아침의 지하철까지 오가면서 한국사 이면을 보여준다.
 
기러기아빠와 조기유학생으로, 상경처녀와 동생으로, 제주도 4.3피해자들로, 파월장병과 그의 어머니로, 위안부 소녀와 그녀를 팔았던 그의 아버지로, 윤락객과 윤락녀로, 고공농성자와 사복경찰로, 소대장과 이등병으로, 국방군 장교와 인민군 부역자로, 상이용사와 독립군으로, 전쟁고아와 기자로 분하면서 관객들에게 페이소스를 제공한다.
 
뺑뺑뺑은 민간극단, 창단 3년 된 신예극단이 제작하는 작품치고는 스케일이 크다. 소극장 연극에 12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한민국연극대상, 서울연극제, 동아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들의 캐스팅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높인다. 순전히 작품 때문에 출연을 결심한 배우들이기에 의욕과 생기가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 관객들은 그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개인적으로 무대미술의 경우 기억에 남을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평소 무대 디자인, 조명을 전문적으로 눈여겨보지 않은 입장에서 봤을 때, 탁월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뺑뺑뺑은 2012<목란언니>로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김은성 작가가 2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다. 그리고 이번 제작을 맡은 극단 달나라동백꽃은 <달나라 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 등에서 내러티브가 강한 사실주의적 작품을 선보였다. 이 둘이 만난 뺑뺑뺑에서는 동시대에 질문 던지기라는 주제와 함께 새로운 연극적 시도를 들고 왔다.
 
짧은 순간을 분주하게 오가는 진행 속에서 일부 상황과 대사는 다소 추상적이거나 상투적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장면은 관객들 안에 내재된 냉소적 유머와 시대정신을 자극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의 파국은, 영화적 상상으로 많이 접해 봤음직한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도발적이고 선동적이었다. 비인간 자본주의의 총체적 난국을 꼬집는 속 시원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