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대한민국에는 믿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MBC ‘음악캠프’에 출연한 가수 두명이 갑자기 옷을 벗고 전라로 무대위를 뛰어다니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진 것. 당황한 제작진이 급히 카메라의 방향을 돌리고 문제의 가수들을 무대밖으로 끌어내렸지만, 그들의 적나라한 ‘알몸’은 이미 7~9초간에 걸쳐 전국에 전파를 탄 후였다. 평온한 주말저녁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성기노출 사건’으로 연신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일각에서는 그럴싸한 ‘음모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시선돌리기 3S정책”

‘음모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사건을 의도적으로 터뜨림으로써 국민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책략이다. 즉 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킴으로써 어떤 문제를 ‘얼렁뚱땅’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술수’라는 것이다. ‘시선돌리기’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국민의 관심을 해체시키고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우민화 정책’인데, 가장 적나라한 예로는 5공시절의 ‘3S정책’을 들 수 있다. ‘3S정책’이란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술수로 요약할 수 있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시급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민을 열광시키라’는 목표하에 3S정책을 실시한다. 올림픽 유치를 지시한 이유, GNP 2천 달러도 안 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배경, 포르노적 욕망을 분출시키기 위한 에로물의 대량 유통, 영화 활성화 정책 등이 모두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술수’였다는 것은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한다.

“기가 막힌 타이밍? 이보다 더 적절할 순 없다!”

‘음모론자’들이 제시하는 설득력있는 근거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다. 즉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안고 있는 문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매번 ‘엄청난’일들이 터지곤 했다는 것.3S정책을 펴던 시기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던 때였다. 당시로서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희석시키고 험한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3S정책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했던 것. 또 지난해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쓰레기 만두’파동 역시 ‘국민연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둔 시점에서 터진 것이었기에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전 국민은 국민연금으로 인해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었으나 때마침 터진 만두파동으로 인해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은 순식간에 잠재워졌다.

또 한 시민의 제보는 ‘정치음모 개입설’에 대한 결정적인 의혹을 남겼다. 그는 “모 포털 사이트에는 이미 4월 20일자에 ‘불량만두’ 에 관한 보도자료가 있다. 그런데 왜 6월 보궐선거 끝난 후에야 터진 것인가”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1989년 발생한 ‘우지라면’ 파동 역시 그 배경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특히 정치자금 관련, 권력에 미운털이 박힌 ‘삼양라면 죽이기’라는 설을 비롯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수개월 전 경쟁사에서 갑자기 가공용 기름을 식물성 팜유로 교체한 것으로 인해 시장 및 정치권의 음모론이 무성했다. ‘음모론’을 지지하는 일부에서는 “각종 음식 파동은 물론이고 연예인 마약, 대형 섹스 스캔들, 올림픽과 월드컵같은 사건으로 은근슬쩍 무마된 사건들을 따져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후에 뭔가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 ‘카우치 사건’은 어떠한가. 모 인터넷 카페 운영자 K(31)씨는 우선 “이번 사건이 반드시 어떤 배후세력에 의해 벌어진 ‘음모’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충분한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K씨에게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몇가지 의혹을 들어봤다. 첫째, 사건이 터진 시기다. K씨에 따르면 이번 사건 역시 ‘절묘한 타이밍’을 안고 있다. 그는 전 국민의 관심이 안기부의 도청테이프와 삼성의 불법자금 게이트에 쏠려있는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모 기업측이 카우치에 모종의 지시를 내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태다. 즉 X파일과 테이프가 공개될 경우 ‘피’를 보는 측에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최후의 방편으로 사건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둘째, 왜 하필 음악프로그램을 이용했을까.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는 주말저녁 쇼프로그램만큼 적당한 건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K씨의 생각이다. 그는 “과거에는 간첩이나 빨갱이로 국민의 시선을 돌렸으나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자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쓰레기만두 등의 문제로 전환했다. ‘음악프로그램’역시 그만한 효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셋째, 굳이 성기노출을 해야했을까. K씨는 ‘성’에 민감한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성기노출’은 국민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극약처방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카우치’는 공중파 방송과 클럽공연을 혼동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단순히 흥에 겨워 저지른 행동이라면 적당한 노출로 끝날 수도 있었다는 것. 그러나 ‘성기노출’까지 간 것은 분명 사전에 어떠한 공모가 있었고, ‘구속’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예상했었음을 감안해볼 때 ‘배후세력’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넷째, 유명 대형가수가 아닌 공중파에 첫 출연한 ‘인디밴드’가 관련된 이유다. K씨는 카우치는 대중적 인기를 먹고사는 뮤지션이 아니라며 시선을 끌기 위해 사고를 쳤다는 일간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는 “인디밴드의 마니아층이 두터운 점을 감안해볼 때, 비록 공중파에서 옷을 벗었다 해도 그들의 인기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점을 이용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생각외로 쉽게 모종의 커넥션이 이뤄졌을지 모른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필 MBC에서 터진 것에 대해 특정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는 일종의 ‘보복성’이 있다는 다소 ‘위험한’ 추측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K씨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거져나오는 ‘음모론’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시점에서 또다른 대형사건이 ‘터져줌으로써’ 애초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희석될뿐 아니라 때로는 소리소문없이 묻히기도 한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눈이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위한 갖가지 추측들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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