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악’으로서의 마이킹

유흥업소의 ‘마이킹’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소위 ‘아가씨’들이 있는 유흥업소라면 ‘마이킹’은 항시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돈이 급해 유흥업소에 발을 들여놓은 아가씨는 당장 먹고 지낼 숙소와 생활비, 치장비 등이 필요했고, 업주로서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묶어둘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기에 이들 사이에 마이킹은 호선의 방편인 동시에 항시 골칫덩어리였다.‘마이킹’은 돈을 빌린 아가씨에게 당장의 넉넉함은 제공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빚으로 인해 업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로 작용했으며, 돈을 갚을 수 없는 아가씨가 야반도주라도 하는 날에 업주는 고스란히 생돈을 날리는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 이는 청량리나 미아리와 같은 성매매밀집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특히 작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공포된 이후 ‘마이킹’역시 불법으로 간주되어 업주들은 합법적으로 아가씨들에게 마이킹을 회수할 수 없는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영업을 강행했지만 홍등가가 예전의 명성을 누리지 못하자 야반도주하는 아가씨들로 업주들은 기자를 붙잡고 ‘못살겠다’며 하소연을 해대곤 했었다. 장사가 안되는 것은 둘째치고, 아가씨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수천만원을 날렸다는 업주들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마이킹해준 돈만 해도 수억원에 달한다’는 업주도 있었다.

업주들 “마이킹 충격 여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지 1년여가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 상당수의 업주들은 마이킹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한 업주는 “도박으로 날린 셈 치기로 했다”며 이미 포기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자기 발로 ‘일하겠다’며 걸어들어와서 오피스텔비며 옷값, 화장품값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빌려가놓고 하루아침에 도망친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업주 장모씨는 “아가씨를 묶어놓을 목적으로 먼저 ‘마이킹’을 제시한 적도 없다. 오히려 아가씨측에서 돈이 급하다고 사정하길래 믿고 3천만원을 빌려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성매매는 순전히 아가씨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법이라해도 빌려준 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입장이었다. 청량리 집창촌 근처에서 옷가게를 했던 오모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이킹 형식으로 아가씨 한명당 적게는 백만원, 많게는 2천만원에 달하는 의류와 구두를 외상으로 제공했는데 받을 길이 없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지난해 10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도망간 아가씨들을 찾아내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감옥에 가는 편이 속시원하겠다”며 격한 감정을 나타낸 바 있다.

업주들 약아졌다

그간 마이킹의 피해자는 아가씨로 인식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서도 ‘불법영업’의 약점 때문에 ‘법’에 호소하지 못한채 끙끙 앓는 업주들은 한둘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구미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마이킹’을 해놓고서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영악한’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화류계 종사자들로 이뤄진 인터넷 카페 등에는 ‘마이킹으로 떼돈벌기’, ‘마이킹 떼먹는 비법’ 등에 대한 정보교류까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분위기를 뻔히 아는 업주들이 약아진 것은 당연지사. 유흥업소 구인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마이킹’에 대한 언급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액수도 기껏해야 수백만원대로 낮아졌다. 여전히 강남일대에서 잘 나가는 에이스급 ‘선수’들에게는 억대의 마이킹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라는 것이 업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오히려 일부 업소에서는 불성실하거나 더 이상 매리트가 없는 아가씨들의 마이킹을 회수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물밑 구조조정’을 시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선수를 치겠다는 속셈.역삼동에서 단란주점을 경영하는 한 업주는 “다짜고짜 ‘마이킹 가능하냐’고 묻는 애들은 일단 경계한다”고 털어놨다. “예전에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고액의 마이킹을 제시하며 ‘모셔오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일할 생각도 없으면서 ‘마이킹’을 노리고 접근하는 ‘꾼’들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또다른 업소 관계자도 “200~300만원 정도의 카드 빚을 먼저 갚아주는 경우는 있지만, 예전처럼 아가씨를 믿고 수천만원의 생활비를 당겨주는 ‘위험한 모험’을 하는 업주는 사라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는 “마이킹비만 날리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자발적으로 2차를 나가놓고 경찰에 신고하는 아가씨(일명 ‘자폭조’)도 있다는 괴담이 돌아 업주들은 초긴장 상태”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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