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지 14일 만인 6월24일 끝내 사퇴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문 후보에 관한 언론의 짜집기식 보도와 마구잡이 논평에 속수무책이었고 야당의 정략적 사퇴 공세에 굴복했다.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 경쟁자들은 문 후보의 사퇴 여부를 놓고 7월14일 열릴 전당대회와 7월30일의 재보선 선거에서 어느 쪽에 유리한가를 저울질하는 데 급급했다. 그들은 집권 여당으로서 문 후보를 지켜야한다는 정치적 도의도 소신도 원칙도 버렸고 오직 기회주의로 눈치만 살폈다.

일부 언론 매체들은 문 후보 검증과정에서 왜곡된 보도와 논평으로 일관했다. 확실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문 후보가 지난 날 쓴 칼럼과 말을 거두절미하여 “친일” “반민족”으로 호도했다. 2008년 “광우병 소동” 때 일부 언론의 편파 왜곡 선동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문제된 문 후보의 말과 칼럼 앞뒤를 한 두 줄만 더 들여다보면 “친일” “반민족”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 후보는 신문사에서 정치부장, 논설위원, 주필 등을 거친 뒤에도 글을 계속 써왔다. 그의 평론들은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두웠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보수적 논리를 폈을 뿐, “친일” “반민족”은 아니었다. 그의 개성적 흠결은 총리 지명 후 언론과의 접촉에서 간혹 퉁명스러운 말투와 감정섞인 반응을 보였던 부분에 있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문 후보를 “극우 꼴통” “반민족” “친일”이라고 몰아가며 사퇴를 요구했다. 야당의 정치적 역할이 집권세력을 견제하며 투쟁하는데 있음을 상기할 때 새정치연합이 문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압박한 것은 정치공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집권당으로서 야당에 맞서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를 보호하고 나섰어야 옳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소장파는 물론 최고 지도부의 서청원과 김무성 의원도 문 후보가 “친일”이 아님을 짐작하면서도 야당과 편파언론의 위세에 눌려 덩달아 사퇴를 주장하였다. 출렁이는 여론에 당 수뇌부가 허둥댔음을 반영한다. 비겁하고 허약한 몰골이었다.

박 대통령도 들끓는 야당과 언론에 겁먹고 문 후보의 청문회 요청안 국회 제출을 계속 미뤘다. 그는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6월21일 귀국해 문 후보 청문회와 관련, 곧 결정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문 후보의 자진 사퇴를 기다리며 계속 침묵했고 23일 저녁 참모를 통해 사퇴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를 총리로 지명했으므로 언론과 야당 공세에 밀리지 말고 소신과 원칙대로 그를 청문회까지 밀고 갔어야 했다.

문 후보는 사퇴하면서 “이 자리에 불러 주신 분도 그분(박 대통령)이시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시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사퇴가 대통령 의도에 따른 것이었음을 엿보게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의 사퇴를 유도한 뒤 자진 사퇴하는 형식을 취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소신과 원칙”을 접고 기회주의적 편의주의로 빠졌음을 반영한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의 “친일” “반민족” 논란으로 자신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데서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여론이 좀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정치적 신의는 물론 소신과 원칙마저 가볍게 내던져서는 아니 된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작년 1월 자신이 선거 때마다 승리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신뢰있게 일관성 있게 쭉 간다”는 데 있다고 답변했다. 정치적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취임 후 여론에 휘둘려 총리 후보자를 3번이나 사퇴케 하는 등 소신을 지키지 못했다. “신뢰있게 일관성 있게 쭉 가지”못하고 침묵 속에 흔들리는 지도자로 각인되었다.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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