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언론사까지 연루된 전대미문의 대형 ‘커넥션’ 사건이 터졌다. 18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외국인 노동자 송출비리와 관련, 검·경·언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여온 거물 브로커 홍모(64)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있는 비밀장부를 찾아냈다. 이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경찰과 언론사 금융기관 간부 등을 상대로 100만원∼수천만원 상당의 돈과 향응을 제공함으로써 ‘금품로비’를 벌인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이어리의 내용대로 이들의 금품수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희대의 로비스트 홍씨는 누구. >홍씨는 4월 네팔인 L(34)씨로부터 한국에 인력을 송출하는 업체로 지정받게 해달라는 대가로 1억3,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14일 전북 전주시에서 검거돼 구속됐다. 홍씨를 조사하던 경찰은 18일 홍씨가 검·경·언 주요 인사들에게 사건 청탁 및 무마 등의 명목으로 금품로비를 벌인 단서를 포착하고, 관련 인사들을 상대로 금품 및 향응의 수수 및 그 대가성 여부 등을 조사중이다.여지껏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사건수임이나 건설업 이권에 개입한 브로커는 많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단독으로 기관과 언론기관에 ‘떡값’을 뿌린 경우는 전무후무할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1990년까지 부산에서 건축업을 했던 홍씨는 큰 부도를 맞아 현재까지도 부인 명의로 거액의 빚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부동산 투자에도 손을 댔지만 사채 이자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그는 사업 경력과 남다른 친화력을 이용해 각계 고위급 인사와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폭풍의 눈’ 홍씨의 비밀수첩

현재 세간의 눈은 홍씨의 다이어리에 집중되고 있다. 평소 홍씨가 일기장으로 사용하는 노트 한권 분량의 이 수첩에는 로비 의혹에 연루된 인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기 때문.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금품을 제공했거나 향응을 베푼 사람은 물론이고 시간과 장소, 로비내역, 로비를 벌인 이유 및 성공여부 등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당초 이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로비를 벌인 단서가 포착된 검.경.언 관계자 10여명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8일 경찰이 “금융권 간부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밝힘에 따라 의혹인물의 폭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파악된 금품로비 관련 대상자는 총 35명에 이른다. 리스트에는 현직 검찰 간부를 비롯한 검찰 관계자 5명, 총경 등 경찰간부 6명, 언론계 국장급 관계자 7명, 금융기관 간부 4명, 국회의원 2명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 세무서, 세관, 구치소에까지 금품을 뿌린 정황도 포착됐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홍씨가 이들에게 제공한 로비의 규모는 언론인과 검찰 관계자에게 각각 3,400여만원, 금융권 관계자에게 2,600여만원, 군인과 경찰에게 각각 900만원, 국회의원 박모씨와 장모씨 그리고 보좌관 등 3명에게 380만원 등 총 1억 220만원 상당이다. 경찰은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금품이나 향응 수수여부 및 대가성 유무를 중심으로 계속 조사중이다. 현재 금품 로비의혹을 받고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대부분 사회의 권력 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은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직무관련성이나 로비의 규모를 떠나 거센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MBC, X-파일 보도 부메랑? “대가성 보도의혹”

한편 이번 사건으로 MBC측에서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MBC가 홍씨로부터 로비를 받고 대가성 보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 다이어리에 나와있는 MBC측 로비 대상자는 보도 담당 간부와 행정담당 간부, 기자와 시사프로그램 작가 등 7명. 홍씨는 이들 7명에게 2003년 9월 22일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총 3,500만원 상당의 현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홍씨가 이처럼 MBC에 대해 대대작인 로비에 나선 것을 두고 네팔의 해외인력 송출 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네팔 근로자들에게서 돈을 받고 업체와 연결시켜주는 ‘해외인력 송출업체’ 선정을 두고 S사와 M사가 경합을 벌였는데, 1차 사업가로 M사가 선정되자 S사 측에서 홍씨를 로비스트로 기용했고, 홍씨는 MBC를 이용했다는 것.

보도담당 간부들과 접촉한 홍씨는 M사의 비리내용을 제보했고, MBC는 지난해 1월 11일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M사의 인력송출 비리를 보도했다. 보도 이후 M사는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부대로라면 홍씨가 청탁성 보도를 요청한 것으로 MBC관계자들에게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MBC측은 “자체 조사 결과 홍씨의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전 ‘삼성 X파일’ 관련, 정·경·검·언 유착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던 MBC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잖은 비난을 감수해야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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