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례 강간후 살해

지난 8월12일 새벽 6시경.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0000호에서 20대 여성 두 명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새벽의 침묵을 깼다. 비명을 지른 주인공은 고교동창 사이인 박모(20), 황모(28)씨였다. 이들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비록 여름철이라 날은 밝았지만, 잠에 곤히 떨어져 있는 고요한 방에 낯선 남자가 침입했기 때문이었다. 침입자는 박씨의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 김모(28)씨였다. 수사 결과 김씨는 지방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특정한 직업없이 지내다가 부모의 간섭을 피해 이 오피스텔에서 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김씨는 교사로 재직중인 부모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중산층 자제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김씨는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박씨를 알게 되었고, 속으로 흑심을 품어오다가 이날 박씨의 집에 침입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전날 밤 박씨는 자신의 오피스텔 출입문을 깜빡 잊고 잠그지 않았다. 그런 틈을 노려 김씨가 들어온 것이었다. 인기척에 놀라 먼저 잠이 깬 사람은 때마침 친구 집에 놀러와 함께 잠을 자던 박씨의 친구 황씨였다. 놀란 황씨가 비명을 지르자 김씨는 들고 있던 흉기로 황씨의 등 부분을 일곱차례나 무자비하게 찔렀다. 흉기에 찔린 황씨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김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피를 본 그의 눈은 성난 야수처럼 변해 있었다. 친구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이 깬 박씨를 본 범인 김씨는 칼로 위협하며 강제로 옷을 벗기고 강간했다. 김씨는 반항하는 박씨의 옆구리와 팔 부위 등을 수차례 찌르고 변태행위를 요구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강간을 저지른 뒤 박씨를 욕실로 끌고가 신체 곳곳을 깨끗이 씻도록 했다. 또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것에 대비해 체외 사정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런 뒤에도 김씨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녀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말 결혼을 앞두고 있던 박씨는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애원은 이미 이성을 잃은 김씨에게 반향없는 메아리였다. 그는 박씨의 양손과 발목을 준비한 청테이프로 묶고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박씨를 살해한 뒤 김씨는 자신의 정액이 묻어있는 침대커버를 오려내고, 박씨를 결박하는데 사용한 테이프를 풀어 수거했다. 그리고 그는 범행에 사용했던 흉기는 나중에 한강에 버렸다. 그의 범죄행각은 초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그야말로 용의주도하고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없는 것일까.

영화처럼 검거했다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사건현장에는 범인과 관련된 일체의 흔적이 남겨지지 않았을 뿐더러 피해자 중 한 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한 명은 중상을 입고 혼절한 탓에 목격자 진술도 확보되지 못했다. 자칫하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질 위험도 있었다.이 때 수사팀의 꼼꼼한 수사력이 빛을 발했다. 단 하나의 실마리에 수사팀은 매달렸다. 그것은 디지털 시건장치로 되어 있는 오피스텔의 현관문 잠금장치를 능숙하게 다룬 점에 비춰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개연성이었다. 금품이 없어지지 않은 점에 미뤄 범인이 피해자와 면식이 있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었다.

이런 상황속에 중상을 입고 입원중인 또 다른 피해자 황씨로부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170cm 정도 키에 둥근 얼굴”이라는 단서를 얻어낸 것도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오피스텔에는 300여세대에 1,000여명의 입주자가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수사팀은 오피스텔 거주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탐문수사를 해나갔다. 당초 수사팀은 범인 김씨가 전과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수사팀과 오피스텔에서 수차례 마주쳤음에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 그가 범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또 매일밤 술을 마시고 버젓이 귀가하는 대담함도 보였다는 것.

그러나 피해자 진술 및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한 결과 김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심증을 굳힌 수사팀은 김씨의 입에서 DNA채취 키트로 세포를 채취,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사건 발생 11일째인 지난 8월23일 국과수에서 “유전자 감정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채취한 정액이 김씨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보내왔다. 범인 김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궁에도 5일 동안이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뒤늦게 후회했다. 경찰은 지난 8월24일 범인 김모씨를 특수강간 및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성분들 지갑 조심하세요”

소매치기 평균 전과 10범. 그야말로 ‘큰 집’을 제 집 드나들듯이 오간 전문 소매치기범들이 마치 조폭집단처럼 대규모 조직을 결성, 서울 시내 병원 및 백화점을 무대로 부녀자들의 돈을 훔치는 전문 소매치기조직이 검거됐다. 절도 등으로 수차례 교도소를 드나들며 교도소 선후배로 친분을 쌓아온 김광식(45·가명) 등 6명은 지난 5월 중순경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식당에 모였다. 심상치 않은 표정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소매치기 전문조직 ‘수아파’ 결성을 위해서였다.이 자리에서 이들은 두목 및 자금관리, 대상자 물색, 기계(직접 지갑을 훔치는 사람), 바람(피해자 주변을 막고 가리는 사람)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등 구체적인 범행계획을 세웠다.

또 나이순으로 서열을 정해 ‘형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것, 걸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망갈 것, 검거돼도 조직원의 신상을 밝히지 말 것, 절취한 돈의 분배에 불만을 갖지 말 것 등의 조직 행동강령도 정했다. 이들은 주로 부녀자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할인매장이나 백화점 지하상가, 병원 등을 주무대로 정하고 범행대상을 정해 행동으로 옮겼다. 물론 이들이 쉽게 소매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정한대로 철저한 역할분담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범행대상이 정해지면 이들은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몇 명의 조직원들이 범행대상을 둘러싸고 시선을 분산시키면 한 명은 칼로 가방을 도려내어 지갑을 꺼내고, 한명은 망을 보고, 한명은 피해자의 시선을 감시하는 식이었다.

또 보통 소매치기범들이 현금만을 노리는 것과 달리 이들에게는 현금뿐 아니라 신용카드도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이들은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이에게 교묘히 접근, 옆에서 몰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지갑을 소매치기해 신용카드로 현금을 자유롭게 인출하는 고단수 수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수아파 일당이 절취한 돈은 약 두달 동안 도합 29회에 걸쳐 무려 1억원에 달했다. 조사결과 이들의 범행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버젓이 이뤄졌는데, 지하철로 이동하며 서울 전역에 걸쳐 범행대상을 물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적게는 하루에 10~30만원씩, 각 조직원당 100만원이 넘는 돈을 나눠가진 적도 있을 만큼 종횡무진 범행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수사관들은 “이들 6명은 소매치기로 절취한 돈으로 크게 한몫 챙길 속셈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강동구 일대 모텔을 잡아 장기투숙해왔으며, 범행이 성공할 때마다 계급에 상관없이 똑같이 돈을 나눠 가짐으로써 조직원간 단합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8월 14일 수아파 조직원중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나머지 한명을 수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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