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론의 최대 화두는 한 젊은 서울시의원의 청부살인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구속된 김 모 시의원이 이름 있는 대학교의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촉망받는 386세대의 운동권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컸다. 386세대는 주로 1980년대 대학에서 정의를 외쳐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을 지칭하는 의미로 인식돼있다.

이런 경력으로 해서 한 시절 4.19세대, 6.3세대 등과 비교되면서 개혁의 주역세대로 사회적 기대를 모았다. 좌파 운동권 출신이 많이 포진해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386세대 이름으로 정치권에 대거 진출해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한 뉴 리더격 인사도 몇 있다. 문제의 김 씨 역시 대학총학생회장 경력으로 어렵사리 민주당 신기남 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가 노무현 대통령후보 캠프 기획위원, 열린우리당 최연소 부대변인을 지낸 인물이다.

알려진 그의 범죄행태는 그 혐의들만으로도 충격을 넘어 엽기적이다. 그런 인성(人性)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정치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시민들 지지로 뽑힌 현역 서울시의원이었다는 사실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끔직스럽다. 빚졌다고 사람 죽이려면 세상에 살아남을 빚쟁이가 어디 있겠는가. 더 큰 분명한 살해 이유가 당연히 밝혀질 것이지만 구속 상태에서도 여유 있게 웃는 얼굴로 오리발내고 있은 배경이 반드시 있어 보인다.

유치장 안에서까지 살인 공범혐의자 팽 모 씨에게 묵비권을 행사해달라는 쪽지를 보내고 하는 수법이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린 상습전과자들 뺨칠 만하다. 과거 운동권들의 체포된 뒤 행동지침 제1항목이 ‘딱 죽기 전까지는 무조건 오리발이다’였다. 그 시절 운동권 강령이 지금 기묘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 386세대 일각의 일탈행위가 없지 않았다.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그들이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의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타가 막다른 길에 들어서서야 고개를 떨구곤 했다. 내부의 자성 노력도 ‘독불장군’ 세계에선 통하지 않았다. 이번 김형식 시의원만 해도 대학 땐 총학생회장으로 재학생들의 선망 속에 지냈고, 졸업 후에는 소원대로 촉망받는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눈 위 말고는 눈 아래로 사람이 옳게 비쳐졌을 리 없다. 그런 사람에겐 세상이 아주 만만해 보이기만 했을 것이다.

내 머릿속 무궁무진한 조화를 누가 따라 오겠느냐는 턱없는 오만일 것이다. 코밑에 온갖 증거를 들이대도 양심으로 그가 범행 전모를 자백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재산가 송 씨가 강도나 ‘묻지마 살인’도 아니고 서로 내왕 없이 모르는 직접 살인혐의자 팽 씨에게 살해당할 이유는 청부살인 말고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다. 그래서 팽 씨더러“가족은 책임질 테니 잡히면 죽어라”고 말했다는 것 아닌가. 팽 씨 주장 외의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죽음은 모든 걸 덮게 된다는 의미다.

80년대 암울한 시기에 국민에게 민주화의 희망을 실어 날랐던 386운동권 출신들의 뇌물 범죄 같은 권력형 비리가 가끔 물의를 일으킨바 있으나 이런 강력범죄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우리는 공직선거 때마다 위선의 두 얼굴에 속을 공산이 얼마든지 있다.

때문에 내가 뼈를 묻고 내 자손이 살아갈 이 땅을 내가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한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무작정 정치에 관심 없다고 손사래 칠일이 아니다. 일부 진보신문은 386세대 운동권출신의 이 엄청난 혐의에 대해서도 단 한 줄의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복잡하게 오늘의 대한민국 자화상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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