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보다 일찍 죽을 위험’과 ‘너무 오래 살 위험’. 보험용어에 있는 말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농담처럼 “에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면 안 되는데…”라고 한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된 듯하다. 따라서 노인복지 문제 또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기대수명이 늘어나 노후가 길어진 탓도 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이 심화된 탓도 크다. 이처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연구팀이 ‘청춘같은’ 노인생활에 대한 대안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른바 ‘시니어 콤플렉스(Senior Complex)’ 플랜. ‘시니어 콤플렉스’ 플랜이란 거주와 생산, 복지, 여가 시설을 함께 갖춘 농어촌 복합형 노인복지단지를 말한다. 시니어 콤플렉스는 21세기 고령사회에 대비하고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도시중산층 은퇴자들을 농촌으로 유입해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개발사업을 창출한다는 것. ‘실버타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생산’개념까지 포함한 ‘시니어 콤플렉스’가 과연 고령화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인가. 서울대 연구팀 이정재(45) 교수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촌노인이 건강하다

“사람들이 일찍 죽을 줄 아십니까?” 시니어콤플렉스 이론 배경에 대한 질문에 이교수의 첫마디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했다. 그는 이어 “노인은 ‘3R’환경에서 건강해집니다”라는 말로 기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3R’란 Relaxation(느긋함), Recreation(즐거운 여가생활과 적당한 육체노동), Responsibility(생계와 사회에 대한 책임있는 생활)을 일컫는다. 이교수는 이러한 3R에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농촌’이라고 말한다. 즉 노인들은 농촌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2년여에 걸쳐 전국 100세인 조사와 장수벨트 지역 연구 결과 농촌노인이 도시노인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이교수가 강조하는 멘트 하나. 노인들을 농촌으로 ‘보내는’것이 아니라 농촌에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니어콤플렉스는 어떻게 운영되며, 노인에게 어떠한 혜택이 있는 것일까. 이교수에 따르면 시니어 콤플렉스 운영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담당한다. 주민들은 입주시 1억~2억원 가량을 자본금 형식으로 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자본금을 지역의 특성화 산업에 투자해 일정금액의 이자를 보장해주고, 입주자들은 공동농장에서의 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노인 입장에서 보면 ‘일거양득’인 셈. 단지 내에는 주택 외에도 보건 의료시설, 문화 여가시설,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입주 노인들의 건강상태는 근처 자매 대학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체크하게 된다는 게 이교수의 설명이다.

지자체 앞다퉈 플랜 발표

오는 2008년쯤이면 현실화될 이 복합노인복지단지가 은퇴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자 시·군들은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시니어 콤플렉스’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전국적으로 ‘시니어 콤플렉스’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지역 실정에 따라 3~10만 평 규모로 복지시설과 주거단지, 생산시설, 문화·체육시설을 갖춘 복합형 노인복지 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북 순창, 전남 곡성 등은 이미 ‘시니어 콤플렉스’ 유치를 선언하고 나선 상태다. 이처럼 노인복지복합단지 조성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노인들이 살고 있는 터전과 다른 또 하나의 도시가 생길 경우, 오히려 지역 공동체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뿐만아니라 기존 지역주민들은 도시사람(외지인)이 들어와 이질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에 배타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화합·융화되는게 쉽지 않다는 것. 입주 시 1~2억원 가량을 투자금 형식으로 내야 한다는 조건도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 그러나 이러한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진 ‘시니어 콤플렉스’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은퇴노인의 63%가량은 ‘적당한 투자처가 있다면 농촌으로 이주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예상하는 적정 투자액은 1억 8,000만원 내외.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 노후생활팀의 한 관계자는 “노인을 사회가 부양해야하는 부양 대상자로만 인식하는 문제에서 ‘시니어 콤플렉스’는 노인에게 적합한 자연적 환경을 갖춘 지역에, 그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산 활동 기회를 준다”며 “이는 고령화 사회를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시니어콤플렉스’ 정책 방향에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시니어 콤플렉스’는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로서, 도시와 농촌의 노인이 모두 안심하고 자신의 여생을 국가에 맡겨, 보람 있는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와 같은 정책은 노인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의 발전 효과도 기대돼 훌륭한 정책 대안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 ‘인구고령화’를 역으로 활용한 사례장수촌 ‘지역특성화’, “꿩먹고 알먹고~”

일본 홋카이도의 중앙부 가미가와 분지에 위치한 작은마을, 타가스마치는 인구의 고령화를 역으로 활용하여 성공한 케이스다. 장수마을의 이미지를 지역특산품과 연계해 늑대의 복숭아라는 브랜드의 토마토 주스를 비롯한 각종 건강식품을 생산해 지역의 활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한 것. 이에 따라 전북 순창군도 고추장과 함께 ‘장수’를 아예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로 내걸었다. 순창군은 도시 사람들이 들어와 이질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을 기존 주민들이 반대할 수 있으므로 도시에 살다가 귀향하는 지역출신에게 우선적인 입주자격을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남 곡성군은 교사 경력이 있거나 음악이나 체육, 미술 등 아이들 특기 적성교육을 시킬 수 있는 노인에게 우선 입주 자격을 준다고 밝혔다. 이는 특기적성 교사가 부족한 곡성군 입장에서도 좋고 은퇴자 스스로도 자신의 일을 갖고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수 있으며’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건강한 환경(장수마을)에서 비롯된 건강한 고령자(시니어)가 ‘고령화’라는 어두운 사회현실에 빛을 비춰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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