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대금 횡령 및 어음사취, 주가조작, 허위공개매수신청 등 각종 사기수법을 총동원해 빼돌린 돈이 무려 3,900억원. 은행을 상대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던 변인호(48)씨는 지난 97년 구속된 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곧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고 급기야 병원을 탈출해 중국으로 달아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 변호사와 의사, 교도관, 경찰관까지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1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렇게 달아난 변씨가 최근 중국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해외 도피 6년 5개월 만이다. 법무부는 수천억원대 금융사기로 중형을 선고받은 뒤 중국으로 달아난 변인호씨가 지난 8월 중국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고 30일 밝혔다.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청구 절차에 따라 조만간 중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계획이며, 검찰은 변씨의 신병을 넘겨받는 즉시 형법상 도주죄를 적용해 추가기소할 방침이다. 변씨가 해외 도피 6년5개월만에 체포되자 그의 범행수법과 도피행각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무장관 집안 사칭 사기행각

93년부터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J&B 등 5개 업체를 차린 변씨는 “할아버지가 외무장관을 지냈고 어머니는 국내 7대 큰손 중의 한 사람으로 삼성·현대도 좌지우지한다”고 떠벌리며 사기극을 벌여왔다. 3년 뒤인 96년부터 다음해 6월까지 변씨는 폐기된 반도체를 값비싼 컴퓨터 부품인 것처럼 위장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8개 은행에서만 2,700억 원을 가로챘다. 또 해태전자와 단국대를 상대로 1,200억원 대 어음사기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엄청난 금액의 사기행각과 함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도피행각은 당시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변씨의 도피행각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 11월 검찰에 구속된 뒤 2심 재판을 받던 98년 여름. 변씨의 친누나는 의정부교도소를 찾아 갔다. 변호사 업계를 잘 안다는 재소자 A씨를 통해 H변호사를 소개 받기 위해서다.

수임료는 무려 2억원. H변호사는 변씨의 고혈압 증세를 서울구치소 의무관에게 3,000만원을 줘 심각한 상태로 탈바꿈시켰다. 교도관까지 매수해 외래진료도 받을 수 있게 했다. 구속집행정지 신청에 난색을 보이는 재판부에는 “우리가 사설 경호원을 붙여 감시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제 남은 일은 병원탈출. 친누나는 변씨의 구속집행정지가 취소될 것을 우려해 경호원 B씨를 100만원에 매수했다. 외국에서 떵떵거리며 살게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이어 변씨는 창문 밖 난간을 통해 유유히 탈출했다. 이후 자신을 체포했던 경찰관 K씨를 1,000만원에 매수, 검찰의 추적정보까지 보고받았다.변씨의 ‘지능적인’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외도피 과정에도 고도의 속임수가 동원됐다. 변씨는 남미에서 사업하는 동생을 시켜 국내의 누나와 수시로 연락하도록 했다. 검찰은 당연히 ‘변씨가 남미로 갈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사방향을 동생 쪽에 맞췄다. 그 틈에 변씨는 중국으로 밀항했다.

호화로운 해외도피 생활

변씨는 중국 도피 이후 두 아들까지 중국으로 불러 외국인 사립학교에 보내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또한 국내 인사들을 배후조종해 거액의 사기행각도 추가로 벌였다. 심지어 위조여권 등을 이용해 국내를 드나드는 ‘대담함’까지 보이기도 했다. 2001년에는 중국 조선족 폭력조직에 납치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도피행각에 네티즌들은 ‘이철희·장영자에 이은 국내최대사기범’, ‘제2의 신창원’ 등 변씨에게 수식어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만큼 변씨의 범행이 이슈화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변씨는 중국 국내법을 어긴 혐의로 구금된 상태라 신병인도가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 담당부서인 법무부 검찰4과 관계자는 “변씨가 중국 경찰에 체포됐을 때 이미 신병인도를 요청했지만 3개월 넘게 답변이 없다”며 “중국 정부가 구금 중인 변씨를 그냥 석방해 버릴 경우 신병을 인도받을 길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희대의 금융 사기범 누가 있나?‘변인호 판박이’ 전종진씨도 곧 강제 소환

희대 금융사기사건으로 70년대 박영복 부정대출사건(1974), 80년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1982)이라면 90년대는 단연 변인호 금융사기사건(1997)과 전종진 아시아자동차 수출 사기사건(1998)이다. 이 사건들 모두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금융사고로서 국민경제의 안정을 뒤흔들었다. 특히 전종진 사건은 그야말로 변씨 사건과 거의 ‘판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씨와 변씨 둘 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수배자(구속 또는 체포영장이 발부되거나 50억원 이상의 경제사범)로 올라 있어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터다. 기아자동차의 옛 계열사인 아시아자동차의 브라질 내 독점 수입상이던 전씨는 96~97년 2억1,000만 달러의 경상용차 2만여 대를 외상으로 수입한 뒤 3,000만 달러만 갚고 1억 8,000여만 달러를 떼먹었다.

이후 아시아자동차를 속여 현지 법인 증자 대금 2억 달러를 부담토록 해 모두 3억 8,000만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아시아자동차와 93년부터 거래를 튼 전씨는 거래 규모가 증가하자 거래 방식을 외상으로 슬그머니 바꾸고 유령 회사를 차려 수출대금 결제 의무를 회피하는 등 애초부터 수입 대금을 떼먹을 목적으로 아시아자동차를 철저히 속여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4,000억 원대의 금융사기행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브라질 교포 전씨는 2000년 6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브라질로 달아났다. 현재 브라질 정부 당국은 전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검거하지는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법무부와 검찰은 브라질 정부 당국에 전씨 체포를 강하게 촉구, 양국이 합의한 만큼 조만간 전씨도 변씨의 뒤를 이어 강제소환 될 운명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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