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기의 달인, 국군 전통의장대들의 사부, 쌍검과 월도의 대가. 20여 년간 무술인의 정도를 걸어온 박권모(40·십팔기보존회 시범단장)씨의 이력이다. 무술 사범 경력 10여 년인 박 단장의 주특기는 쌍검과 월도. 이를 토대로 십팔기(18가지의 기예)를 전수, 범 같고 용 같은 고수들을 양산해 냈다. 박 단장의 특기는 ‘쌍검’이다. 이는 두 자루의 칼을 사용하여 방어와 공격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검법이다. 짧고 가벼운 칼을 사용하기 때문에 날카롭고 변화무쌍하며 화려하고 민첩하다. ‘쉭쉭’ 검을 휘두르며 허공을 가르는 몸놀림이 현란하기 그지없다.

‘월도’는 일명 ‘대도’라 불린다. 폭이 넓고 날카로운 칼이 옆으로 누운 달 모양과 같다 하여 ‘언월도’라 부르기도 한다. 도(칼)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잡아 걸고 채고 휘두르는 동선이 커 그 위용이 대단하다. 보통 사람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월도를 박 단장은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을 다루듯 능숙하게 휘두른다. 특정부위 힘이 아닌, 내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십팔기의 달인’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몸놀림과 내공이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김광석 선생과의 만남

그는 십팔기 무술 사범으로만 10여년을 근무했다. 십팔기와의 인연은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7년.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워 막연히 무림계를 동경했던 그는 진정한 무예를 수련하고 싶었다. 태권도 같은 맨손무예와 동시에 검과 같은 병장기를 들고 할 수 있는 무예는 없을까 고민한 결과, ‘십팔기’라는 해답이 나왔다. ‘십팔기’는 권법(신체의 움직임)을 비롯하여 단병장기, 장병장기를 모두 수련하게 되므로 종합무예인 셈이다. 이러한 십팔기에 대한 동경만을 갖고 있던 그가 직접 해범 김광석 선생을 찾아간 게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그도 몰랐다.

해범 김광석 선생은 십팔기의 전승자로서, 무예의 대가이자 많은 민속학자와 종교계 지도자들이 ‘숨겨진 한국의 국보’라고 칭하는 인물이다. 해범 김광석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운동이라곤 태권도를 배웠던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김광석 선생이 ‘하겠냐’고 물었을 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십팔기의 세계에 뛰어든 첫걸음이었다. “내 몸에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체의 움직임이 원활해지더라고요. 병장기를 다루는 기술도 빨리 익혔고요.”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이런 무기를 쓸 데가 어디 있다고 연마하는 것일까.“병장기는 손과 발, 신체의 연장입니다. 권법과 병기술을 동시에 익히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 나중에는 병장기가 없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는 거죠.” 무협지에 나오는 검신일체(檢身一體)를 연상케 한다. 과연 고수다운 대답이었다.

불량배들 혼내주기도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수련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많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때는 싸우느라 바빴다”고 한다. 그 시절 몇 가지 일화. 한번은 집 뒤 인왕산 누각에서 수련을 하다가 남학생 패거리들과 싸움이 붙을 뻔 했다. 무예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수군대며 심하게 떠들었던 것.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자, 거칠 것이 없는 몇몇 남학생들이 먼저 공격할 태세로 대들었다. 그러나 박 단장의 카리스마로 단번에 제압, 중학생 패거리들은 범상치 않은 그의 외관에 꼬리를 내리고 산을 내려갔다고 한다. 만약 싸움이 붙었다면 그 남학생들은 무슨 사고가 났을지 모를 일이다. 지하철 안에서 싸울 뻔한 적도 있다.

취객이 한 여성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나섰다가 그와 실랑이가 붙은 것. 취객은 박 단장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가볍게 피하며 팔을 꺾어 제압했다. 그는 노인을 괴롭히는 불량배 서너 명을 혼쭐 내준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박 단장은 범죄자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휴일 저녁, 집 뒤 인왕산에 올라 무예를 연마하는 그를 보고 주민들은 수상하게 여겼던 것. 어둑해진 시간에 건장한 남자가 자기 키만한 창과 칼을 들고 산을 오르내리니 주민들이 범죄자로 오해할 만도 하다. 이후 동네에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산다’ ‘요즘 밤만 되면 인왕산에 호랑이가 나타나 한 두시간 배회하다 사라진다’는 등 흥미진진한 소문도 나돌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주민들과 무우(武友)들로부터 ‘인왕산 호랑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특허업무 보는 전문직업인

박 단장은 뜻밖에도 ‘김&장 법률 사무소’에서 특허업무를 보는 전문인이다. 낮에는 광화문으로 출근하고, 밤에는 도장에서 틈틈이 후학을 지도한다. 십팔기는 어떠한 무술보다 실전적인 무술로 평가받고 있다. 실전에서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국군 전통의장대에 채택돼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십팔기는 직접 참여하여 수련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십팔기의 보존과 발전에 동참하고자 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을 포함해 그동안 십팔기를 배운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른다.

박 단장의 향후 목표는 ‘무림원’을 설립하는 것. “십팔기를 비롯해 모든 무예의 산실이자 훈련원 역할을 하는 곳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무술원로와 무우(武友)들이 모여 바둑도 두고 무담을 나누면 얼마나 좋겠어요. 후학도 올바르게 이끌어주면 이것이 곧 한국 무림의 발전이 되겠지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십팔기를 전승하며 도복을 벗지 않겠다는 박씨. 조선의 국기(國伎)를 잇는 그에게서 호랑이의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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