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민비)의 조카이자 친일파로 알려진 민영휘의 후손들이 수년째 재산다툼을 벌이고 있다. 16억원을 호가하는 고미술품을 두고 전처와 후처 자식들간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김완섭씨의 계속되는 친일발언 파문에 이어,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제정 1주년 기념행사를 강행한 것으로 인해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일파 후손들이 벌이는 재산다툼에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휘문의숙(현 휘문중고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후손들이 수년에 걸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시가 16억원 상당의 미술품 때문이다.

사건은 민영휘의 손자 민모씨가 사망하면서 진귀한 고미술품을 남긴 것이 발단이 됐다. 1968년 S씨와 협의이혼, 그해 K(80)씨와 재혼한 민씨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미술품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4월 민씨가 사망하자 미술품의 상속권을 두고 민씨의 전처 자녀 3명과 재혼한 부인 K씨 및 그의 자녀 2명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다툼은 민씨가 남긴 미술품들이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가품인데서 비롯됐다. 민씨가 남긴 미술품은 단원 김홍도의 인물도(3억원 상당), 민화 십장생도(3억원), 오원 장승업의 8폭 병풍그림(8,000만원) 등 총 35점으로, 이들의 총 감정가는 무려 16억 7,000만원에 상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처의 자녀 3명은 고미술품들이 상속 재산인만큼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혼한 부인인 K씨는 1970년대 초부터 직접 수집하거나 친정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과 교환한 것들이므로 80%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양측은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여왔다. 집안싸움이 법정싸움으로… 결국 이들 양측의 다툼은 단순한 집안싸움을 넘어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2002년 6월 서울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신청을 냈고, 당시 재판부는 “자녀 4명이 미술품들을 경매에 부쳐 대금을 나눠가질 것”을 판결했다. 이는 이미 민씨에게서 부동산을 물려받은 김씨와 그녀의 아들 1명이 상속대상에서 제외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미술품들이 누구의 재산이라고 인정할 마땅한 증거가 없어 부부의 공유재산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술품 정산금액의 절반(8억 3,000만원 상당)은 30년 이상을 함께 산 부인 K씨가 소유하는 것이 맞고, 나머지 절반의 상속 재산은 민씨의 자녀 4명(전처 자녀 2명과 김씨 자녀 2명)이 같은 비율로 상속하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법원의 이러한 ‘돈 정산방식’ 판결은 미술품의 성격상 동일한 분배가 힘들뿐 아니라, 가족간에 수년동안 법적 공방을 벌여온 상황에서 경매를 진행할 경우, 가족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김씨측과 전처의 자녀들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또 미술품들의 실제 주인을 가려 지분을 확정해 달라며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 현재 2심 계류 중이다. 친일파는 망해도 3대는 간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친일파로 알려진 민영휘의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민영휘가 일제시대 친일행각으로 많은 돈을 끌어 모았으며, 친일파에 해당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에 확인한 결과, 민영휘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에서는 ‘민영휘가 강남의 대표명문사립인 휘문재단의 창립자이며, 그 후손이 여전히 재단운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친일파의 후손이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친일파의 후손들은 대부분 이중 국적자들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세금도 내지 않는다.

또 산타모니카와 팰러스버디스 같은 부촌에서 대저택과 농장을 소유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고발성 글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심지어 강남의 노른자땅과 남이섬 일대 알짜배기 땅마저도 친일파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 조상에 그 후손 ‘집안망신’,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국내 정서상 친일파 후손들간 재산다툼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당연히’ 고울리 없다. 일부는 ‘일제때 부당하게 모은 재산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꼴이란…’, ‘그 조상에 그 후손’, ‘뻔뻔스러운 친일파 집안의 추태’라는 식의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분노케하는 것은 친일파 선조들이 남긴 재산을 되찾으려는 후손들의 움직임이다.

선조들이 친일행각으로 모은 재산을 둘러싼 친일파 후손들의 행동은 신랄한 비난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찾기 움직임과 관련,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종자들’, ‘이들에게 사유재산보장이나 인권 등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또 그간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은 걸핏하면 터지곤 하는 일본의 망언 등과 관련,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국민들의 성난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민영휘 후손들의 다툼은 비록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아니지만, 친일행적을 한 조상이 남긴 재산을 두고 벌이는 ‘집안싸움’이라는 점에서 따가운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친일파 후손 재산찾기 ‘제동’

친일파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검찰이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현재 조상의 땅을 되찾겠다는 목적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소송은 모두 9건으로 송병준, 이재극, 나기정의 후손이 각 한 건 씩, 이근호의 후손이 6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중 8건에 대해 담당 재판부에 소송 중지 신청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미 판결이 확정된 17건 가운데 정부가 일부라도 패소한 8건에 대해서도 법원에 재산 처분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낼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시행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친일파 재산환수법에 따르면 ‘친일재산’은 러·일 전쟁 개시 전부터 해방 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은 대가로 취득했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이를 알면서도 물려받았거나 증여받은 재산으로 국가 소유로 귀속토록 정하고 있다. 단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선의의 제3자가 친일재산을 취득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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