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권고안을 내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전투경찰이 현역병으로는 처음으로 ‘동성애’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또다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계집애 같다” 는 말에 모욕감

지난 6일 서울 도봉경찰서 전투경찰대 소속 유정민석(24) 일경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의 커밍아웃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역병의 신분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열어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유 일경은 “‘사내자식이 계집애 같다’는 그런 ‘성적 소수자’로서 바라봤던 남성화된 병영문화의 병폐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성을 재생산하는 군대라는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부한다”며 “자매애보다는 전우애를, 상생과 공생보다는 상멸과 공멸의 결말을 가진 군사주의와 남성우월주의적인 군대를 내 안의 겁 많고 어리버리한 여전사는 온몸으로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유 일경은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산하 여성주의 소모임과 민주노동당 성적소수자위원회 등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9월 군 입대했고, 그해 11월 도봉경찰서로 자대 배치 받았다. 이후 그는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다 의병 제대나 부적격 제대를 목표로 경찰병원과 수도통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군의관은 “여성 지향이 있긴 하지만 약한 동성애자로 과거에는 전역사유가 됐으나 현재는 라이프스타일로 보기 때문에 전역사유로는 힘들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유 일경은 지난달 2일 병가를 받고 나와 3월 2일을 넘겨 미복귀(탈영)상태로 기자회견을 갖고 종로경찰서에 자수해 조사를 받고 있다.

성 정체성 인정 ‘찬반논란’

성적 소수자를 위한 인권단체 등에서는 대체 복무제 도입에 앞서 성 소수자가 군 복무시 인권을 보장받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으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군 환경 개선은 단지 성소수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군부대 현실상 모든 장병에 해당하는 문제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군 형법 92조에서 동성애를 ‘계간’(鷄姦ㆍ동성끼리의 성관계)으로 규정하고 징병신체검사와 관련된 국방부령에서 동성애를 ‘정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강력히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부분이다.동성애자인권센터 황장권 사무국장은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라고 밝히면 성관계 장면을 찍은 사진 등을 요구하는 등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라며 “이는 군 전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군 간부에게 인권 교육을 시행하는 등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명지대 권인숙 여성학 교수도 “군대는 동성애라는 ‘성적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위계 구조를 만드는 데 좋지 않다는 단순한 관점으로 혐오하고 단순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유 일경의 병역거부 선언을 계기로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의 병역거부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마찬가지로 전과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선뜻 도입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국방부의 기본 방침은 동성애자도 군복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며 “동성애자 등 소수자보다 이를 빌미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려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대처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 연대회의 관계자 인터뷰“병역 거부권은 인간 본연의 문제”


36개 시민, 사회단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병역거부권이 “특정 종교인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 본연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Q : 공익근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과 같은 병역특례제도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적용되는 대체복무제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 : 현행 병역제도는 공익목적이나 방위산업육성 등을 목적으로 비군사분야의 군복무 인력을 매우 광범위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약 4~6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거친 후 대체로 현역 군복무보다 다소 긴 기간을 복무하게 된다. 하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그것이 단 4주, 심지어는 단 한차례라도 군사훈련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라는 생각에, 이를 거부함으로써 3년 이하의 징역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Q : 현재 대부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A : 한국에서 과거, 현재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불교신자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와 같이 다른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르는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대만의 경우 스님으로서 병역거부를 하여 현재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사례도 있고, 서구에서는 기독교, 가톨릭, 퀘이커 등 다양한 종교인들과 개인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Q :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된다고 하면 누구나 선택할 것인데, 그렇다면 남북이 군사적인 대치상황에서 안보위협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A :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었을 경우 기초군사력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다수 젊은이들이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거부를 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군사력규모 및 안보상황이 유사한 대만에서도 이 점을 우려했었지만, 현역복무보다 1.5배나 긴 대체복무 신청자는 정원에 미달했다고 한다.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매년 600여명 남짓한 정도로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이미 전체 군복무자의 1/3에 해당하는 인력이 현역이 아닌 비군사분야에서 복무하고 있는 실정에서 군사력 약화나 안보위협우려는 다소 과장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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