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한 40대에 돌연사·구안와사 백수 속출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8월 국정감사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의도가 분주하다. ‘국감스타’를 만들려는 국회보좌진과 국회의원들의 ‘주적’을 면하기위한 피감기관간 신경전이 뜨겁다. 그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바로 대관업무팀(CR. Corporate Relation 對官)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대관업무 종사자들 역시 노련미와 순발력에 풍부한 경험까지 막상막하다. 그러나 국회보좌진들이 ‘갑’이라면 대관업무 종사자들은 ‘을’이라는 점에서 창과 방패관계다. 대관업무 종사들의 애환과 눈물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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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기업 오너 출소하자 팀 공중분해 ‘파리목숨’

# 장면 하나. 대기업 L사에 종사하는 노총각 40대 A씨.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는 잘나가는 기업의 대국회 대관 담당자다. 외모도 서글서글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해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 인기도 좋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구안와사라는 안면신경마비로 한의원에 다녀왔다. 구안와사는 보통 과로와 스트레스로 신경이 쇠약해져 면역력이 저하됐을 때 주로 발병한다. 불규칙한 생활습관, 식습관, 스트레스, 운동과 수면부족에 잦은 음주가 원인이다.

# 장면 둘. 유명한 대기업 C사에 근무하는 B씨. 40대 홍보담당자인 그가 갑작스레 돌연사한 사건이 업계에 알려졌다. 언론사를 상대하는 만큼 스트레스에 과도한 회식으로 뇌경색 등 신경계 이상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 장면 셋. 방산업체로 유명한 H사의 대관업무 40대 C씨. 최근 재판중이던 오너가 집행유예로 나오면서 대관업무팀 자체가 해체됐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는 그는 ‘명예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그마저 거부하고 보직 이동 후 자진사퇴하게 만들었다. 한때 잘나가던 일간지 기자출신이었지만 40대 나이에 마땅한 직장을 다시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그래도 대관업무는 다시 안 하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대관 또는 홍보 담당자 특히 국회를 담당하는 40대 대관업무 종사자들의 현실이다. 월급도 많은 편이고 업무환경도 좋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일을 성사시켜야 하는 만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야흐로 여름휴가가 끝나면 국회는 바로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 돌입한다. 한마디로 서슬퍼런 감독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피감기관들이 바빠지는 시즌이다. 국회를 담당하는 대관업무 종사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대외협력 담당자들로 행정 부처 소속이 있다. 주로 5급 사무관이나 6급 사무관이 맡고 있다.

또 다른 대관업무 종사자는 공기업, 공공기관 소속의 전략기획실 혹은 경영기획부 직원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피곤한 부류인 민간기업 소속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이다. 두 부류가 그나마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면 민간회사에 다니는 대관업무 종사자들은 파리목숨이다. 그러나 이들이 맡은 임무는 막중하다. 기업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외부 변수에 대응해야 하고 민형사상 소송, 사업 규제, 정부 정책 등 중대 현안에 대해 기업 이익을 관철시켜야 하는 사실상의 로비팀 성격이 강하다.

‘증인 채택’ 대타 세우기 백태

대관업무팀은 기획, 마케팅, 영업, 서비스 등 다른 부서가 해결할 수 없는 업무를 은밀히 처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국정감사 기간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이 오너를 증인으로 채택할 경우 ‘무산’시키거나 최소한 대표가 아닌 직급이 낮은 임원을 대타로 내세우는 작업이 대표적인 예다. 말이 ‘증인 빼기’지 자존심 센 국회의원들의 고집을 무마시키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스폰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A씨는 일주일간 휴가를 마치고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와 국회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그는 “좀 더 쉬고 싶지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뿐이다. 결혼도 해야 하고 적지 않은 나이로 재취업이 만만치않다. ‘백수’가 된 C씨는 한창 구직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업 오너가 2010년 비자금 수사로 조사를 받기 시작할 무렵 잘 다니던 일간지를 때려치우고 2012년 법정 소송중에 스카웃돼 대관업무팀에 들어왔다.

하지만 오너가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그가 속한 ‘000연구소’자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보직이동됐고 적응하기 어려운 업무환경에 그는 반강제적으로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대관업무 종사자로서 불명예퇴직에다 명예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토사구팽’된 셈이다.

주로 일반기업 대관업무 종사자들은 국회 보좌진이나 전직 공무원, 기자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국회 상임위원회 현안을 파악하고 증인·참고인 채택 등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다. 또한 정책 수립과 입법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자사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학연, 혈연, 지연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통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야당의 20년 넘은 한 보좌관은 “요즘은 국회 출입하는 기자들이나 정보원들보다 대관업무 종사자들의 방문이 가장 많다”며 ‘발로 뛰는 기자’는 옛말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했다. 가장 활발하게 대관업무를 운영하는 기업은 SK, KT, LGU+ 통신업체다. 삼성, 현대 등 10개 대기업 역시 계열사별로 대관업무를 둬 국회와 정부 부처간 소통 통로를 만들어놓고 있다.

하지만 업무 성격이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을 상대하는 만큼 ‘담장 위를 걷듯’ 아슬아슬하다. 우선 국내에선 로비가 불법이다보니 ‘로비스트’역할을 하면서도 ‘걸리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관업무 종사자들은 스스로 국회와 정부 그리고 기업간 ‘소통’ 통로로서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불법과 합법이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가을 국회’ 긴장하는 대관업무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점심때부터 ‘폭탄주’로 시작해 늦은 저녁까지 차수를 변경해 술을 마시고 2차까지 원하는 보좌진을 대동해 여의도에서 강남 룸살롱으로 데려가 대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관업무 종사자들의 ‘돌연사’가 급증했고 이직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국회 음주문화가 다소 건강해졌다는 평이지만 그래도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는 남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다시 찾아온 가을 국정감사로 인해 대관업무 종사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배경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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