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하는 썸’ 요즘 연인들

[일요서울 | 서준 프리랜서] 사실 일반적인 의미의 썸도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상한 것이 사실이지만 ‘섹스하는 썸’의 관계는 더욱 의아하다. 도대체 왜 섹스를 하면서도 서로가 연인관계라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세대론적 시각으로 다가서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의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우선 경제 불황이 남녀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지금은 3포세대를 넘어 4포세대, 5포세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관계는 물론 미래의 집을 사는 것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요즘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할 수는 있어도 섹스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섹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섹스로 인한 대가다. 전통적으로는 섹스를 하게 되면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연인' 사이가 형성되면서 책임이 형성되고 그것이 신뢰로 깊게 이어지면 결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아무리 섹스를 하고 신뢰가 깊어도 서로 결혼을 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 몰린 젊은이들이 섹스는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연인이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섹스하는 썸’의 관계로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남녀 공히 섹스는 하되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가 암묵적으로 합의되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실제 이러한 해석은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섹스는 포기하기 힘든 그들이 결국 섹스는 하지만 그 이상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꽤 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젊은이들 중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히는 경우도 있다. 현재 3년째 구직 중인 최모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관계

“물론 나도 과거 대학시절에는 애인이 있었고 한때는 꽤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관계에 대해서 나 스스로 책임을 지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그건 물론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결혼하고 살기에는 그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그냥 섹스를 하고 같이 시간을 즐기기는 해도 더 이상의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는다.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해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언제부터 ‘요이 땅'하고 출발한 것도 아니다. 우리도 원치 않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작됐고, 그렇다고 지금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서로가 전혀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섹스를 즐기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은 서로에게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관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현재 책임을 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 자체가 힘든 세대들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젊은이들 특유의 ‘쿨함’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쿨함'이란 인정머리 없음, 책임감 없음 등으로 생각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로가 각자의 생활을 즐기고 서로를 존중하고 보다 배려심 강한 자세와 태도로 인정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이러한 쿨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금의 ‘섹스하는 썸’이 완성됐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한 문화비평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말 그대로 한번 자면 책임을 지는 관계였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완전히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지금 같은 시대에 한번 자고 책임지라고 이야기하면 정말로 싸가지 없고 매너 없다는 식으로 평가될 것이다. 섹스 한번 하는 것 가지고 뭘 그리 대수냐는 이야기다. 세상이 변했고 그에 따라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섹스라는 것 자체의 위상이 과거처럼 순결도 아니거니와 ‘지켜야할 것’도 아니다.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함께 즐기는 것이 됐다. 그런 점에서 섹스에 대한 이러한 정서와 태도들이 지금의 경제불황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경제적 상황이 변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서 배경엔 경제불황도 있어

그런 점에서 때로 이들의 관계는 과거와는 다르게 너무도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싸우고 울고 원망하면서 ‘지지고 볶는’ 과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역시도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서로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지나친 열정과 애정도 없는 사이에서는 그냥 서로 전화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결국에는 끝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여성의 연애담을 들어보자.

“사실 처음부터 그리 대단한 관계는 아니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핑크빛 미래를 그리지도 않았다. 그냥 사귀고 섹스하고 그럭저럭 지냈는데, 어느 덧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그냥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 시간이 한달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으로부터도 연락이 없었는데, 굳이 내가 할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다. 그때 ‘정말 연애라는 것이 이렇게 끝나기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도 허망한 시간이고, 허탈한 헤어짐이었다.”

기성세대들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관계이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관계가 현실에서 분명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관계는 그저 의미 없는 ‘섹스 파트너’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섹스를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 그래서 미래를 함께 하려는 꿈을 꾸지도 않고 또 다른 연인이 생겨도 질투하지 않고 그냥 헤어지게 되면 또 그냥 헤어지는 그런 관계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우리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낯설고 새로운 풍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근원에는 관계가 그렇게 밖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 어른들이 잘못이 끼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보다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최소한 성실하게 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새로운 개선의 상황이 엿보이는 것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불황이 한 순간에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지금의 사회구조가 갑자기 변화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난 때문에 고생하는 젊은이들은 또한 이렇게 연인사이의 관계에서도 기존과는 전혀 다른 낯선 환경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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