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불교·개신교·원불교·대한성공회의 종단(宗團) 지도자들이 2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에 지난달 탄원서를 각기 제출, 빈축을 사고 있다. 종북 내란음모죄로 1심 재판에서 12년의 징역 선고를 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7명의 혁명조직(RO) 조직원들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이었다.

염 추기경은 탄원서를 통해 ‘재판부가 법의 원칙에 따라 바르고 공정한 재판을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동시에 그들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청원한다.’고 했다. 이어 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등도 선처를 요망하는 탄원서를 재판부로 보냈다.

누구나 범죄인을 선처해달라고 탄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12년 선고를 받은 이석기 죄인은 다르다. 그는 RO 총책으로 대한민국을 파괴해야 할 적(敵)으로 규정하고 내란을 획책했다. 그와 RO 추종자들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자기들의 혐의를 “조작”이라고 반박했으며 반성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염 추기경은 재판부에 ‘바르고 공정한 재판’을 요구함으로써 “조작”이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아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염 추기경의 탄원대로 골수 종북 내란음모자들을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선처해 준다면, 그들은 다시 대한민국 전복에 나설 수 있다. 실상 이석기 피고인은 지난날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간첩단 사건으로 실형이 확정돼 복역했고 노무현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다. 대한민국은 중죄를 지어 복역한 이석기를 사면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게 했고 국회의원이란 특권까지 누리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다시 대한민국 전복을 음모하다 체포됐다. ‘우리 사회 한 일원으로’ 살 수 없는 공산주의 내란음모자이고 평양에 가서 영웅 칭호를 받고 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 지도자들은 이석기와 RO 조직원들을 선처해달라고 탄원했다. 특히 종단 지도자들이 선처를 탄원한 피고인들은 ‘종교는 아편’이라며 종교인들을 처형하는 북한 공산독재를 추종한다는 데서 더욱 이해할 수 없다. RO 조직원들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대한민국 자유민주체제를 파괴코자 무장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데서 종단 지도자들이 탄원서를 낼 만한 사람들이 못된다.

보도에 의하면 내란음모 혐의 피고인 측과 통합진보당은 탄원서를 받아내기 위해 연초부터 종교지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7월초 피고인 가족들은 “5월에 바티칸에서 교황님을 알현하고 왔다.“며 그 내용을 설명하고 싶다면서 염 추기경 면담을 요청했다. 염 추기경은 그들을 만난 1주일 뒤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피고인 가족들은 곧이어 조계종을 방문, 염 추기경의 탄원서 제출 사실을 알리며 자신들이 준비해간 탄원서를 제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염 추기경은 피고인 가족들의 교황 알현 설명에 흔들려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자승 스님은 염 추기경이 탄원서를 냈다는 말에 동요돼 서명하기에 이른 듯 싶다. 종단 지도자로서 신중치 못했고 줏대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피고인 가족들의 조직적인 탄원몰이에 휘둘린 허약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익집단의 로비에 놀아난 정치권의 추한 작태를 상기케 한다. 종단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의심받기에 족한 행위였다. 이 나라에는 종교계에서조차 믿고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는 데서 아쉽기 그지없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