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변 이후 “국가 개조”라는 거창한 말이 정부와 사회 지도층 사이에 번져간다. 세월호 같은 비극 재발을 예방키 위해서는 국가 개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개조란 불합리한 국가의 법·정치·제도와 비뚠 국민의식 개혁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담화에서 차제에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아일보가 일반 국민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7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87.9%가 ‘국가 대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응답했다. 7월 한 시민단체 모임에서도 “이번에야말로 사회를 바꾸지(개조)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국가 개조는 이 시대 담론의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대개혁·개조 구호는 지난 수십년간 수없이 되풀이 되었고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와 입심좋은 사람들이 복창해 온 단골 메뉴였다. 세월호처럼 292명의 생명을 1993년 10월10일 수장시킨 서해훼리호 침몰 때도 정부와 국민들은 그럴 듯한 대책들을 쏟아냈고 “안전 불감증”을 성토하며 국가 대개혁·개조를 절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1년이 지났지만 개혁 개조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형 참사는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서해훼리호 참사 1년 뒤인 1994년 32명의 사망자를 낸 한강 성수대교 붕괴, 그로부터 3일 뒤 30명을 삼킨 충주호 유람선 화재, 1995년 101명을 희생시킨 대구 지하철 공사장의 가스 폭발, 두 달 뒤 502명을 압사시킨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190명을 질식사 시킨 대구 지하철 방화, 2014년 대학생 10명을 깔아 죽인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지붕 붕괴 등이 반복되었다.

저와 같이 대형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떠들썩한 국가 개조 다짐이 빈 말로 그쳤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들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큰소리로 사고 책임자들을 꾸짖었으며 국가 대개혁·개조를 외쳤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까맣게 잊어버렸다.

국가 개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제도 개혁만으론 안 된다. 개혁된 제도를 운용하는 국민의 비뚠 의식이 동시에 개조되어야 한다. 제도 개혁은 국회 입법이나 대통령령으로 당장 가능하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체질화된 국민의 안전·법·질서 의식 결여는 뜯어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누대(累代)에 걸쳐 유전적으로 굳어진 잘못된 의식을 개혁하려면 유치원부터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 법·질서 시민의식은 18세기 시민혁명과 함께 긴 세월 생활을 통해 의식화 될 수 있었다.

국회 입법이나 대통령령으로 국가 개조가 완성될 수 있었다면, 서해훼리호 참변 이후 상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변 등은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박 대통령이 5·19 담화를 통해 국가안전처 신설과 관피아 척결 등을 선언했지만, 국민들의 안전·준법·질서를 갖춘 시민의식이 체질화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세월호 참변은 피할 수 없다.

세월호 재발 방지를 위해선 요란하게 국가 개조를 외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유치원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조용히 계몽이 실시되어야 한다. 언론, 교육, 종교, 문화, 시민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법·질서·안전을 생활화 하도록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제라는 데서 모두가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이 서서히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국가 개조는 시간·인내·지속성과의 싸움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국가 개조를 외치다가도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데서 걱정된다. 영구적인 국가 과제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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