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일간신문에 변호사들 89%가 전관예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응답한 기사가 실렸다. 서울변호사회가 최근 소속회원 1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던 결과인데, 79%는 전관예우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걸로 나타났다. 이들 변호사들은 전관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들이 존재하는 한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견해였다.

변호사 자격 없는 고위 공직자가 로비를 위해 ‘고문’이름으로 대형로펌에 취직했다가 다시 공직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에 대해서는 절대다수가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근래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관피아’ 척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여론의 질타가 계속됐던 항목이다. 이 ‘전관’의 모순은 사람들을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검찰 권력의 상징으로 주로 정치권 사정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앙수사부의 부장검사 출신들이 지난해 4월 대검 중수부 폐지 후 첫 정치권 사정 수사의 변호사로 나선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 못해 애잔한 느낌까지 자아낸다.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변호인단의 핵심은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인 것으로 보도됐다. 새정치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입법 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의 변호는 박영수 전 중수부장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비리에 맞서는 창을 휘둘렀던 중수부장들이 비리혐의 정치인들을 위한 방패를 잡았으니 당연히 모순이 느껴질 만 한 것이다. 물론 그래서 안 된다는 법은 변호사법 어느 구절에도 없겠으나 우려되는 점이 분명히 있다. 일반인들 관점에서 언제 회전문인사에 의해 다시 법무장관으로 복귀할지 모를 옛 상관에게 현직 검사들이 제대로 대응키가 버거울 것이란 우려가 왜 안 생기겠느냐 말이다.

전관예우의 관행이 바로 그런데서 나온 것이다. 그 아니라도 존경하고 따르던 옛 선배 상사를 상대로 치열하게 맞서기가 시쳇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어려울 노릇이다. 검찰 수사가 강하게 속도를 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뜨뜻미지근해졌다는 정황이 없지 않았다. 법원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공직경력을 이용한 사익추구 행위가 전관예우의 본질임을 모를 판사, 검사들이 없겠으나, 현직들 역시 옷 벗고 나갔을 때를 생각 안할 도리가 없을게다.

언제나 법, 검 수뇌부의 취임사가 행해지는 말 중심에는 후배들이 소신을 지키고 외압에 굴하지 말 것과 청렴 하라는 당부가 빠지지 않고 들어있다. 그래놓고 막상 옷 벗고 나가서는 그처럼 돌변하는 모순을 일으킨다. 2014년 잔인한 4월 나라를 온통 수렁 속에 빠뜨린 세월호의 비극에서 국민의 공분을 산 ‘해수마피아’ 척결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했던 카드가 안대희 총리 후보자 지명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물러나도록 만든 것이 또한 전관예우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면 전관예우를 척결하지 않고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는 사실이 자명해졌을 뿐 아니라 높은 공직 경력이 경륜으로 신망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 사정이 명백해졌다. 겉 모양만 번듯한 대한민국의 꼴사납기 그지없는 안 모양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만방에 가감 없이 알려진 터다.

현 한국 정치를 예인하고 있는 세월호 영혼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바가 새로운 나라의 틀을 마련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업적과 성공여부가 이 한 가지 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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