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국감은 끝났지만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에게는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있다. 국감 성적표는 향후 대권가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국감은 여야 대권주자들에게는 실험무대와 같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여야 차기주자들의 국감 성적표를 점검해 봤다.

정동영 "휴우 살았다"

국감이 시작된 지난 9월4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출석한 통일부에 대한 국감은 시작 전부터 여야 의원들이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시작했다. 피감기관인 통일부가 제출한 국감자료가 부실하다는 야당의원들의 지적과 이에 반박하는 여당의원들이 국감 시작전부터 공방을 벌였던 것.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정 장관에게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가 무슨 참여정부냐”며 ‘참여정부’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주문. 정 장관은 “알겠다”라고 답변해 초반 신경전에서 한발 물어선 듯했다. 그러나 계속된 질의 답변에는 ‘참여정부’라는 용어를 고수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음을 보여줬다.이날 국감에서는 또 정 장관에게 국내외 테러대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요구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한국이 알 카에다의 테러대상국으로 지목된 이상 테러위협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아니다”며 대책마련을 다짐했다. 이날 국감에서 정 장관은 발빠른 대중행보에는 능하지만 무게감이 없다고 지적되는 평소와는 달리 신중하게 국감질의를 잘 넘겼다는 평을 받았다.

김근태 "내가 이렇게 당당할줄 몰랐지"

김근태 장관도 지난 4일 보건복지부 국감장에 출석했다. 이날 국감에서 김 장관과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맞붙었다.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났던 두 사람의 악연이 국감장으로 이어진 것.김 장관은 다른 의원들의 질문에는 대부분 “알겠습니다”등으로 잘 수긍했으나, 정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정 의원님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나”하면서 맞받아치는 신경전을 벌였다. 또 야당의원들이 복지부 정책에 대해 ‘사회주의’, ‘독약’ 등등으로 표현하자 김 장관은 “사회주의라는 규정에 동의할 수 없다” “독약이란 표현은 과도하다”등으로 반격했다. 이날 국감에서 자신감을 피력하며 의원들의 질의에 대처한 김 장관은 진지하지만 결단력이 느리다는 평소의 지적을 보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명박 "여당의 문건은 공문서 위조"

지난 6일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수도이전 반대를 위한 ‘관제데모’의혹을 집중 추궁했다.하지만 이 시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원속에 “민제데모는 있어도 관제데모는 있을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서울시 국감 사흘 후 이 시장이 부정했던 관제데모 문건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 시장은 사면초가 신세에 몰렸다. 하지만 21일 헌재가 수도이전을 위헌으로 판결함으로써 수도이전을 강도높게 비판했던 이 시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더불어 수도이전 반대에 사활을 걸었던 이 시장에게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손학규 "어휴 뭐라고 둘러대나"

지난 14일 열린 경기도 국감에서 손학규 경기지사는 본전도 못 찾은 꼴이 됐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복지예산 편성 전국꼴찌’, ‘성매매 사각지대’ 등을 들며 손 지사의 정책부재를 질타했다. 손 지사는 국감에서 지원병 없이 여야 의원들에게 뭇매를 맞아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가 좁혀지고 말았다.특히 여당의원들은 손 지사를 두고 “이명박 시장의 들러리”, “소아적 사고” 등의 표현을 쓰며 도지사로서의 무능을 집중 추궁했다. 손 지사는 의원들의 이러한 질문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해 완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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